박홍규 지음
이다미디어
464쪽, 1만8000원
“법전은 악마의 성경”(하이네). “좋은 법률가는 나쁜 이웃”(마틴 루터). “(법학을 공부한 이유는) 인간에 대한 무관심을 체험할 수 있는 직업을 찾기 위해서”(카프카).
이런 인용구를 찾아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있다. 전방위적 집필가 집단의 대표적 인물,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가 ‘예술의 자유와 법의 구속’을 주제로 책을 엮었다.
법에 대한 증오가 예술가의 소양이라 할 만큼 양자는 적대관계에 있다지만, 그런 극단적 ‘관계’ 탓에 법과 대결한 예술작품은 많다. 대표적인 예가 ‘금서 목록’이다. 예술을 자의적으로 금할 수 있는 권력을 법이 방조한 탓에 단테의 『신곡』,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 까지도 여러 국가에서 한 때 금서 목록에 올랐다. 역사적 금서의 목록을 모으자면 세계문학전집이 될 판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말하는 흔한 사례들이겠다.
저자의 ‘위트’는 다른 곳을 찌르고 있었으니, 세계사적으로 유명한 이 금지된 작품들이 한국에서는 단 한 번도 금서인 적이 없었다는 지적이다. 스페인의 프랑코 독재 정권은 괴테나 스탕달조차 금서로 규제한 나름의 ‘수준 있는’(?) 감식안을 지녔으나 우리의 군사정권들은 이 저자들을 금할 만한 식견도 없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정신 나간 외국 문학 사대주의와 무식한 국내 예술 금지 행정이 공존하는 희한한 나라가 한국”이라고 꼬집는다. 하긴, 스페인 내전 중 공산주의자들의 내밀한 세계를 그린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가 한국에서 출판된 게 1984년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1930년대 국제공산주의 운동에서 ‘스탈린의 적’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좌절을 그린 이 작품을 ‘반공 소설’로 분류해 허용했다면 제법 ‘식견 높은 실책’이겠다.)
이 책은 법과 정의에 관련된 문학·영화·미술·오페라 작품들의 두툼한 DB(데이터 베이스), 혹은 다이제스트다. 책에서 가지를 뻗어 해당 작품들까지 이어지면 법과 예술을 고민하는 훌륭한 안내서가 된다. 거론되는 작품이 방대한 만큼 이 책만으로 끝내려고 든다면 논의가 도중에 끊어져 다소 미진한 감이 있다.
배노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