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은 체육… 올림픽 종목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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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기성 우칭위안(吳淸源)9단은 바둑을 가리켜 "오천년 역사를 지닌 동양의 머나먼 도(道)" 라고 했다.

그러나 일본바둑계의 기인 후지사와 슈코(藤澤秀行)9단은 "바둑을 도(道)라 부르든 예(藝)나 놀이로 생각하든 그건 그 사람 마음이다" 고 했다. 후지사와의 말 그대로 바둑은 오랜 세월 유유자적하며 무엇으로 정의되든 신경 안 쓰고 지내왔다.

그러나 요즘 세상은 그런 식의 무소속을 허용하지 않는다. 어딘가 속하지 않고서는 힘을 쓰기 어렵다. 한국기원이 '바둑의 올림픽 종목 가입을 위한 세미나' 를 시작으로 '바둑의 체육화' 에 불을 지피는 주된 이유도 여기 있다.

한국기원 총재인 민주당 한화갑 의원과 정범구 의원이 주최하는 이 세미나는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25일 오후2시부터 열린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인 정수현 9단은 주제발표에서 몸과 정신을 하나로 보는 몸학(somatics)의 조류를 예로 들며 바둑을 스포츠로 보는 데 무리가 없다는 관점을 제시할 예정이다.

몇년전 이창호 9단에 대한 병역 특혜가 논의될 때 "바둑은 예능이냐, 체육이냐" 라는 문제가 공식적으로 제기됐다. 이창호 9단이 국위선양에 지대한 공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바둑이 체육일 경우 프로에겐 공익근무의 혜택을 줄 수 없다는 것이 당시 정부의 해석이었다.

한국기원은 이때 바둑이 예능임을 설명하는 글을 관청에 보내야 했다. 예술 쪽은 프로와 아마의 구분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대세는 '바둑의 체육화' 쪽으로 숨가쁘게 흐르고 있다. 중국은 1949년 공산정부 수립 당시부터 바둑을 스포츠의 하나로 분류해 체육부 산하에 두었다. 예도(藝道)임을 주창해온 일본도 방향을 틀어 1999년 체육협회에 가맹했다.

일본기원은 서양장기인 체스, 카드게임인 브리지와 함께 바둑을 올림픽 종목에 가입시키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나 체스가 1990년, 브리지가 1995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스포츠종목으로 인정받은 데 반해 바둑은 아직 큰 진전이 없는 상태다.

유럽은 거의 전 나라가 바둑을 두지만 아시아(특히 중동)쪽이 의외로 보급이 안 되어 있고 아프리카는 1개국 뿐이다. '4대 대륙, 75개국' 이란 기본 요건을 채우려면 노력이 더 필요하다.

세계 최강국인 한국이 여기에 힘을 보태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 올림픽 가맹운동을 하려면 바둑의 스포츠화가 선결문제다. 한국기원이 바둑의 스포츠화를 서두르는 또 다른 이유는 진학문제 때문이다. 체육분야는 중.고교는 물론 대학까지 특기자로 진학하는 길이 열려있는 데 예능분야로 분류돼 있는 바둑은 특기자 진학의 길이 매우 비좁다.

이 때문에 어렸을 때 바둑을 배우다가도 중도에 포기하는 일이 많아 신세대들이 바둑과 멀어지고 있는 점도 바둑계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25일의 세미나는 신병식 SBS논설위원이 사회를 맡고 한국기원의 홍태선 사무총장등 바둑계 인사와 함께 대한 체육회 김봉섭 사무총장, 문화관광부 정태환 체육국장 등 6명이 토론자로 나선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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