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전국프리즘

반코드 여론를 중시하는 기회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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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수도 이전의 법적 근거인 '신행정 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8:1로 위헌이라고 결정하였다. 헌재의 위헌 결정으로 가장 커다란 피해자가 된충청도민은 분노와 허탈감에 빠졌다. 지난 대선 때 충청도는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믿고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여 그의 당선에 기여했고, 또한 17대 총선에서도 대통령이 탄핵되면 행정수도 이전이 물 건너 갈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하여 여대야소의 정국을 탄생시킨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정치 불신과 실망이 클 것이 분명하다.

정치적으로는 가장 큰 타격은 노 대통령이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수도 이전 반대는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 운동, 퇴진운동으로 느끼고 있다"고 정권의 명운을 걸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구세력의 뿌리를 떠나서 새세력이 국가를 지배하기 위한 터를 잡기 위해서 천도가 필요하다"고 하여 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지배세력 교체와 평등주의 실현 전략의 하나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충격과 실망감은 충분하게 이해가 간다. 하지만 헌재의 결정이 나자마자 "정부는 헌재의 결정을 겸허히 수용한다. 수도권 과밀문제 해소와 국가균형 발전을 위해서 다른 방안을 모색할 것이다. 충청도민에게 죄송하다. 특단의 수습책을 세우겠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의연하고 성숙한 모습을 보였으면 모든 국민들은 박수를 쳤을 것이다. 노 대통령이 통 큰 정치, 속 시원한 정치, 관용의 정치, 법을 존중하는 정치, 생산적인 정치, 통합의 정치, 화끈한 정치를 선 보였다고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종래의 시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청와대는 처음에는 관습헌법은 처음 듣는 이론이라고 하면서 반발하는 모습을 노골적으로 표출하였으나 국회시정 연설에서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유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평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그 결론의 법적 효력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헌재 결정의 법적 구속력에 대하여 완곡하게 수용하는 자세를 보여 다행스런 일이다. 국민들은 그동안 벼랑 끝에 선 노 대통령이 헌법개정이나 국민투표 추진 등 어떤 승부수를 던질 것인가 불안했던 것이 사실이다. 정부여당은 탄핵심판이 기각되었을 때 헌재가 민주주의를 수호했다고 극찬하더니 자신들에게 불리한 결정이 나자 헌재가 헌법을 훼손했다고 맹비난을 퍼붓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달면 삼키고 쓰면 뱃는 정부 여당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이는 결국 초법성과 탈법성을 부채질하여 무정부 상태를 촉발시킬 가능성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화가 난 충청권 의원들은 헌재 재판관에 대한 탄핵 발의를 추진한다고 했으니 국민들은 정말 불안했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복잡한 것은 다 알지만 정부여당이 그동안 보인 행태는 보기 민망하고 딱하고 안쓰러웠다. 정부여당이 왜 그리 이유가 많고 쩨쩨한지 실망한 것이 사실이다.

정부는 이제 행정수도 이전과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국민들이 헌재의 결정을 높게 평가한 이유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많은 국민들이 오늘은 기쁜 날, 좋은 날, 즐거운 날이라고 하면서 이제 한국의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등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는 행정수도를 옮길 수 없어 좋고 즐겁고 기쁜 것이 아니라 국민여론을 무시하고 과거로 과거로, 좌로 좌로 질주하는 노무현 정부에 대하여 헌재가 합법적으로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민심은 천심이다. 여론(輿論)은 가마를 끌고 다니는 평민들의 소리라고 한다. 코드 여론만 여론이 아니다. 반코드 여론도 국민여론이다. 정부여당이 국민여론을 주도적으로 이끌 능력과 자신이 없으면 최소한 국민의 뜻에 따르기만 해도 욕은 덜 먹을 것이다. 20%대의 지지를 받는 정치지도자는 오히려 국민에게 짐이 된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가. 이제부터 반코드 여론에도 순응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 그리고 충청권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합법적인 대책을 조속히 마련하기 바란다.

홍 득 표(인하대 교수, 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