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출신 할머니에 ‘무릎 선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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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찬 힘찬병원 원장(오른쪽)이 이옥선 할머니를 병원에서 만나 반갑게 손을 잡고 있다. [오종택 기자]

때아닌 봄 폭설로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 지난 10일 오후, 서울 송파의 힘찬병원 진료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백발의 이옥선(81) 할머니가 들어서자 이수찬(48) 병원장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꼭 쥐었다. 이 원장은 “어디 아픈 데는 없느냐”며 연신 안부를 물었다. 할머니는 “내가 평생 웃음이 많기 힘든 삶을 살아왔지만 이 박사만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며 활짝 웃었다.

둘의 인연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동인천길병원의 정형외과 의사였던 이 원장은 평소 알고 지내던 스님으로부터 딱한 사연을 전해 들었다.

“15살 때 부산 집 앞에서 일제에 의해 종군위안부로 끌려간 뒤 58년 만에 귀국한 한 할머니가 무릎 때문에 심하게 고생하고 있지만 건강보험 혜택도 못 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호적에는 이미 사망 처리까지 되어있다고 했다. 바로 이 할머니였다. 이 원장은 당장 돕겠다고 나섰다. 무릎 상태를 살펴보자 연골은 물론 뼈까지 심하게 닳아 있었다. 힘겹던 삶의 흔적이었다. 할머니는 “너무 아파서 혼자서 화장실에 가기조차 힘들다”고 했다.

그해 2월 26일 무릎에 인공관절을 넣는 수술을 했다. 이 원장이 직접 집도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어서 할머니는 다시 고통 없이 걸을 수 있게 됐다. 할머니는 “중국에서도 어떻게든 고쳐보려 했지만 안 됐다”며 “마치 두 번째 삶을 맞은 것처럼 좋았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2000만원의 수술비가 문제였다. 29살 때 중국 연변에서 만난 북한 출신 청년과 결혼해 1999년 사별한 직후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어렵게 귀국한 이 할머니에게 그만한 거금이 있을 리 만무했다. 이 원장이 또 나섰다. 자신의 월급에서 몇 개월에 걸쳐 수술비를 공제처리 한 것이다.

다리가 낫자 할머니는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는 데 앞장섰다. 매주 수요일 서울 종로의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되는 수요집회에 참가했다. 또 일본·중국·미국 등지를 다니며 종군위안부 문제를 증언했다. 이 원장도 2002년 힘찬병원을 설립하며 바쁘게 생활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끈끈하게 이어졌다. 9년간 둘 사이에 오간 편지만 100통이 넘는다. 이 원장은 자신의 고민을 편지를 통해 털어놓기도 했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미명의 새벽에 운동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게 소소한 낙이었죠. 그런데 녹내장이 생긴 탓에 새벽 운동을 그만두게 돼 너무 안타깝습니다.’(2009년 11월에 보낸 편지 중)

할머니가 아플 때면 이 원장은 인천 부평의 병원에서 경기도 광주의 ‘나눔의 집’까지 차로 2시간을 달려가 진료하곤 했다. 할머니는 위안부 문제 증언을 위해 외국에 다녀올 때마다 이 원장에게 줄 자그마한 선물을 잊지 않는다고 한다. “수술 뒤 원장님이 꽃다발에 예쁜 리본을 달아 보내왔다”며 “리본은 이사할 때마다 가지고 다니며 방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둔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특별한 인연은 할머니의 손자까지 이어졌다. 할머니는 결혼 당시 남편이 데려온 자녀를 키웠다고 한다. 중국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매일 눈물로 지낸다는 말을 들은 이 원장은 올 초 할머니의 손자를 한국으로 초청했다. 그러고는 경희대 어학당에 입학시키고 자신이 세운 힘찬장학회를 통해 장학금까지 전달했다.

글=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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