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중국 위안화의 질서 있는 조정이 최선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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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중국에 위안화 평가절상은 불편한 사안이다. 중국은 수출을 통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한국보다 더 높다. 위안화 절상은 중국에 치명적일지 모른다. 그동안 투자한 막대한 설비가 과잉설비로 전락할 수 있다. 중국으로선 위안화 가치를 낮게 묶어둬 일자리와 수출을 유지하고 싶은 유혹을 받게 마련이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지난 주말 “강제적인 방법으로 다른 나라의 환율에 압력을 가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며 반발했다. 위안화 환율은 ‘중국 스스로, 점진적으로, 합리적 범위 안에서 조정한다’는 3대 원칙을 다시 한번 고수했다.

그러나 국제교역과 환율에는 상대방이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주 “중국이 시장친화적인 환율 체계로 옮아가야 한다”며 위안화 절상을 노골적으로 압박했다. 앞으로 미국의 수출을 확 늘리겠다는 수출 촉진정책을 들고 나왔다. 수출 유망 품목의 발굴과 무역금융을 통한 지원까지 다짐했다. 중국과 미국이 정면으로 맞부딪치는 모양새가 되고 있다. 원 총리가 “중국의 내수 촉진과 수입 확대를 통해 무역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다”는 타협책을 제시했지만 역부족이다. 미국의 불만이 폭발해 다음달 15일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면 통상마찰 전쟁은 피하기 어렵게 돼 있다. 세계경제의 가장 불행한 시나리오다.

국가들 사이의 우의는 어느 한 쪽의 인내가 필요하다. 그동안 전 세계는 중국의 사회 안정을 위한 방도의 하나로 위안화 저평가를 용인해 왔다. 지금은 그런 인내가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위안화 저평가가 세계경제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인위적 환율 정책은 미국의 과소비와 함께 글로벌 경제 파탄을 부른 주범으로 지목된 지 오래다. 중국의 경제 덩치가 훌쩍 커지면서 더 이상 몸을 숨길 그늘도 사라졌다. 글로벌 경제불균형을 풀기 위해 위안화 평가절상은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다.

강대국들 간의 환율 전쟁은 엄청난 후유증을 남기게 마련이다. 역사적으로 거친 통상마찰과 급격한 환율 변동으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중국은 위안화를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외국의 압박이 불만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중국에 위안화 환율의 질서 있는 조정은 최선의 선택으로 보인다. 세계경제의 안정적인 성장을 뒷받침하고 중국에 미칠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닌가. 중국은 위안화 평가절상이 가져올 긍정적 효과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중국이 고민하는 인플레이션과 자산 거품을 차단할 수 있다. 중국 국민의 삶의 질이 높아지고, 장기적으로 내수 확대에도 보약이 될 것이다.

한국은 그동안 중국의 경제성장에 따라 반사이익을 누려온 게 사실이다. 이제는 위안화 평가절상에 대비할 때가 됐다. 단기적으로는 대중국 수출이 늘어나겠지만 길게 보면 원화 평가절상 등 우리에게 불리한 측면이 적지 않다.그러나 위안화 절상은 끝이 아니다. 세계경제 구조조정의 출발점이란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세계경제의 뼈대를 바로잡는 길고 고통스러운 수술이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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