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여중생 사건] 갈길 먼 경찰, 왜 이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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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이모양 살해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결정적 제보를 받고도 묵살한 뒤 이를 제보자의 탓으로 돌려 비난을 사고 있다.

부산시 사상구 삼락동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이영란(36)씨는 7일 오전 출근한 뒤 지갑 속에 있던 현금 27만원이 없어진 사실을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이씨의 미용실은 김길태가 검거된 빌라 바로 맞은편에 있다. 그 전날엔 미용실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 “음식물이 자꾸 없어진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럼에도 경찰은 이 지역에 검문을 강화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김이 10일 검거된 뒤 경찰에서 “미용실에서 현금 27만원과 열쇠 두 개를 훔쳤다”고 진술했다. 이 때문에 경찰이 신고 즉시 집중 탐문 및 수색을 벌였다면 김을 빨리 검거했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경찰은 “미용실 도난 건은 신고가 아닌 첩보 수준이었고, 경찰관이 현장에 출동했을 때 이씨가 자녀의 소행으로 의심해 별수 없이 돌아왔다”고 밝혔다.

이씨는 12일 기자에게 “경찰의 설명에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이씨는 “돈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바로 112에 신고 전화를 했으며,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은 되레 우리 아이들이 용돈이 부족해 저지른 일로 몰아갔다”고 했다. 이씨는 “당시 출동한 경찰은 기록조차 하지 않았으며, 20분 만에 ‘김길태 수색 작업에 참여해야 하니 가 봐야 한다’고 말하며 떠났다”고 했다. 경찰은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 두 명을 감찰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검거 과정에서 주민 김용태(50)씨가 현장에서 김의 발을 걸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김씨가 현장에 있었다는 것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경찰은 검거 직후 “빌라에서 내려온 김길태를 경찰관이 몸을 날려 덮쳐 검거했다”고 발표했을 뿐이다. 이에 대해 김용태씨는 “내가 발을 걸자 김이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경찰은 “주민 김씨가 발을 건 사실이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고 다시 발표하면서 일단락됐다.

하지만 현장에 있었던 이영란씨는 “김길태가 김씨의 발에 걸려 넘어지지는 않았다”며 “그러나 김길태가 김씨가 내민 다리에 중심을 잃고 넘어진 것을 분명히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주위 사람들에게 “경찰관의 압력에 못 이겨 경찰에서 내가 진술을 바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부산=송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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