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BOOK] 일제 강점기 인기 가수, CF 퀸은 기생들이었대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기생, 조선을 사로잡다
신현규 지음
어문학사
292쪽, 1만8000원

‘기생(妓生)’은 어둠의 말이다. 입을 열어 ‘기생’이라 말할 때, 온갖 음탕함이 들썩인다. TV 드라마나 B급 영화 등이 아무렇게나 빚어놓은 ‘창기(娼妓)’의 이미지 때문일 테다. 이 책은 이런 값 싼 접근법에 강한 부정으로 답하며 시작한다. 일제 강점기에 활약했던 기생들에게서 현대 대중문화의 한 뿌리를 길어낸다. 이를테면 책은 ‘기생’이 어둠과 빛의 이미지를 두루 걸쳤으며, 그러므로 차라리 ‘여명(黎明)’의 말에 가깝다고 힘주어 말하는 듯하다.

우선 눈에 들어온 건 문화 홍보 대사로서의 기생이다. 책은 일제 강점기 최고의 요릿집 ‘명월관’으로 안내한다. 이곳에선 외국인 손님들을 위한 연회가 자주 열렸는데, 명월관 기생들은 이들에게 조선의 전통 춤·노래 등을 선보였다.

기생들은 신(新)문화에도 적극적이었다. 이름 난 기생들은 앞다투어 유행가를 취입하기 시작했다. 잡지 ‘삼천리’가 1935년 조사한 10대 여자 가수 목록엔 기생 출신이 세 명이나 포함됐다. 그 가운데 으뜸은 평양 기생 왕수복(1917~2003)이었는데, 그는 음악은 물론 광고·방송계에서 맹활약하면서 당대 최고의 스타로 떠오른다.

저자는 기생이 현대 연예인의 시초였다고 본다. 현재의 스타 시스템이 이미 일제 강점기에 태동했다는 주장이다. 기생들을 관리하던 권번은 요즘으로 치면 연예기획사 쯤에 해당한다고 한다. 당시 권번은 ‘기생영업인가증’을 받아 기생과 수입을 배분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었다. 기생들은 권번을 중심으로 당시 대중문화계를 압도했다. 장연홍·노은홍·김영월 같은 기생들은 요즘으로 치면 ‘CF 퀸’으로 떠오르며 적지 않은 수입도 올렸다.

책은 풍부한 사진 자료와 신문 기사 등을 토대로 오늘날 연예인처럼 대중 스타로 추앙받던 기생의 모습을 탐색한다. 기생들은 자신들의 스타성을 토대로 독립운동 등 사회 활동에도 적극 나섰다고 한다. 전통 문화의 전파자로 출발해 대중 스타로, 사회 운동가로 기운차게 성장했던 조선 기생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정강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