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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 BOOK] 인류의 역사는 폭력의 역사, 그 계속되는 야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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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폭력사회
볼프강 조프스키 지음
이한우 옮김, 푸른숲
344쪽, 1만5000원

암울한 이야기다. 인간이 서로 협력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다 폭력 때문이란다. 독일의 사회학자인 조프스키는 책 한 권을 인간이 얼마나 폭력적인 존재인지를 입증하기 위해 독설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인류가 고문·사형집행·전투·학살 등 여러 형태의 폭력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왔는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제시한다. ‘인류의 역사가 곧 폭력의 역사’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는 사회가 생겨난 근원은 행동이 아니라 폭력이 가져올 신체상의 고통이라고 말한다. 죽음을 생생하게 느끼도록 하는 폭력이야 말로 지배관계를 만들어내고 종속시키는 원동력이었다는 설명이다. "죽음에 대한 불안이 없다면 힘이나 권력의 권위는 생겨날 수 없다.”국가 건설 또한 대량 폭력과 정복 행위에 이뤄졌고 종교도 예외가 아니다. 인간 존재의 유한성을 내세우고 ‘진리’를 내세우며 고안된 종교는 이단을 배척하는 데 폭력을 적극 사용했다.

저자는 사형집행도 공동체 유지라는 명분을 내 건 집단 폭력의 기본 형태이며, 학살은 비무장 민간인에 가해지는 야만적인 집단 폭력이라고 보았다. 폭력에 환호하는 구경꾼의 역사도 길다. 이교도나 마녀가 처형당하는 화형 장작더미 아래, 암살자가 능지처참 당하는 광장에 있던 구경꾼은 요즘 극장에서 공포·전쟁 영화를 보고 있는 이들과 그리 다르지 않단다.

지은이는 문명과 문화도 폭력과 다양한 방식으로 얽혀있다고 말한다. 기술이 발전하면 폭력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잘못된 믿음, 즉 현대문명의 신화에서 제발 깨어나라는 경고다. 다양한 유형의 폭력 장면을 서사시처럼 써내려간 문체가 매우 낯설지만, 폭력 문제를 거대한 역사의 맥락에서 냉철하게 성찰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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