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투빈 지음
강건우 옮김, 라이프맵
640쪽, 3만8000원
지난 2000년 조지 W 부시와 앨 고어 사이의 대선 결과를 둘러싸고 미국은 둘로 갈라졌다. 플로리다 주 검표가 문제였다. 그때 더 나인, 즉 9명의 법신(法神)이 모여 있는 헌법기관 연방대법원이 5대4의 판결로 검표 중단을 결정했다. 미국 최고의 정치규범을 만들어내는 연방대법원 판결에 고어는 충격 받았다. 예정대로 검표를 진행한다면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으나, 그는 끝내 승복을 선택했다.
“연방대법원 판결에 동의할 수 없다. 그러나 받아들이겠다.”
민주사법의 본산인 연방대법원의 권위를 보여주는 일화다. 이 책은 미 연방대법관 9명의 스토리다. ‘더 나인’ 각자의 스타일에서 입신과정, 사법철학 그리고 중요한 사안이 등장할 때마다 밀고 당기는 의사결정이 리얼하다. 그게 이 책을 읽는 재미다. 항상 최종 판결문만이 공표될 뿐, 내부토론·협상과정 등은 감춰져있는 상황에서 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이면의 스토리 공개가 또 있을까?
더구나 우리의 대법원과 헌재(憲裁)의 권위를 합친 미 연방대법원의 내부 메커니즘은 그동안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엄격한 인준과정을 거쳐 종신으로 선임될 때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지만, 의원·주지사 등 대중정치인과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조직을 다룬 첫 저술로는 밥 우드워드의 『지혜의 아홉 기둥』이 유명하다. 워터게이트의 특종기자인 그가 30년 전에 그 책을 펴냈다.
원제는 ‘The Brethren’으로, 대법관들이 서로를 호칭할 쓰는 ‘형제자매들’에서 따왔다. 9명의 법신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나라가 흔들릴 수 있음을 암시한 그 책은 1969~76년 당시의 연방대법원을 다뤘다. 베트남 전쟁, 흑백 갈등, 문화 충돌, 워터게이트 등의 굵직한 사건들이 불거진 시기이다. 『더 나인』은 그 이후 오늘에 이르는 시기를 배경으로 미국 민주사법의 메카를 다룬다. CNN의 법조 기자 출신인 저자의 심층 취재결과 만들어진 이 책이 소설 그 이상이다.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국가의 진로와 정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2000년 대통령선거 당시 플로리다 주 재검표 중단 결정이 대표적인 예다. 사진은 2003년 12월 보수파 로 분류되던 16대 연방대법원장 윌리엄 렌퀴스트(사진 앞줄 가운데)를 중심으로 자세를 취한 9명의 대법관들. [중앙포토]
이렇게 등장인물이 펄펄 살아있는데다가 미국을 출렁이게 한 극적인 사건들이 연속 등장하면서 타협과 갈등이 전개된다면, 소설은 더 이상 훌륭할 수 없다. 게다가 연방대법원은 진보·보수의 이분법을 넘어 미국의 양심을 대변하지 않던가? 이런 스토리를 만들어낸 저자 투빈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조우석 <문화평론가>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