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북한 김영대 발언 촉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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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영대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의 2일 아바나 발언은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모두 상당 기간의 소강상태를 맞을 것임을 예고한다.

특히 남북 당국간 접촉의 조기 재개를 예상해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상반기 중 서울 답방(答訪) 성사를 추진해 온 정부는 차질이 생길까 우려하고 있다.

金부위원장은 최근 대남접촉의 창구로 급부상하고 있는 북한 민족화해협의회의 회장을 겸하고 있는 대남통이란 점에서 그의 언급에 무게가 실리기 때문이다.

◇ 먹구름 낀 상반기 중 대화재개〓金부위원장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시대착오적 발상' 으로 규정하고, 미국의 새 대북정책 윤곽이 드러날 올 상반기까지는 북한 당국이 신중한 입장을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한.미 정상회담(3월 8일.워싱턴) 결과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도 구체적 언급을 않던 북한이 고위인사의 입을 통해 처음으로 "상반기까지는 지켜보겠다" 는 시간표를 제시한 것.

북한은 부시 행정부 안팎에서 터져나오는 대북 강경기조에 노동신문 등 관영 매체를 총동원한 대미 비난공세로 맞서며 불만을 표시해 왔다.

그러나 대남비난의 수위는 높이지 않으면서 신중한 입장을 취해 왔다.

이는 미국의 입장을 완화시키는 문제나, 대북 지원 사안을 '남한측이 알아서 판단해보라' 는 신호가 담겨 있다는 게 정부의 관측이다.

또 지난달 13일로 잡혔던 5차 장관급 회담을 일방 파기하면서 우리측에도 가하고 있는 '압박' 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당국간 대화의 단절상태가 오래 갈 경우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면서도 뾰족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세현(丁世鉉)전 통일부 차관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1월 상하이(上海)방문에서도 나타났듯 중국의 대북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면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정부의 중국 라인을 가동할 필요가 있다" 고 말했다.

◇ 남북 막후접촉 없나〓김영대 부위원장은 "우리 입장은 박재규(朴在圭)전 장관을 통해 모두 (남측에)전달했다" 며 "서울의 朴전장관에게 물어보라" 고 밝혔다. 그러면서 남북관계에 대한 질문에는 입을 다물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남북간에 최근의 헝클어진 관계와 관련한 비선접촉이 있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들은 "북한측이 직접 메시지를 보내온 적은 없다" 며 "朴전장관이 주요 대북 파트너로서 남북문제 협의를 주도해 왔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왔을 것" 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임동원(林東源) 통일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꽉 막혔던 과거와 달리 남북간의 공식.비공식적 교감(交感)이 이뤄지고 있다" 며 막후접촉의 가능성을 내비친 바 있다.

이영종 기자

사진=주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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