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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코 공주가 이지메 당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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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일왕(일본에서는 천황) 아키히토(明仁)의 손녀인 아이코 공주가 여느 어린이들처럼 가방을 메고 어머니 마사코 왕세자비와 함께 등교하는 모습. 2008년 입학 직후 모습이다. [지지통신 제공]

일왕(일본에서는 천황) 아키히토(明仁)의 손녀인 아이코(愛子·8)가 동료 학생들로부터 신체적·정신적 괴롭힘을 당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왕실은 물론 일본 사회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아이코는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나루히토(德仁) 왕세자의 외동딸이다. 도쿄 시내 가쿠슈인(學習院) 초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다.

한때 여왕 후보로까지 거론됐던 아이코가 급기야 지난 2일 불안과 복통을 호소하며 조퇴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왕세자 일가를 담당하는 궁내청은 “슬픈 일”이라며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사태의 심각성을 공개하고 학교 측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요 일간지는 그동안 사건의 진상에 대해 침묵해왔다. 일본에서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여기는 왕실의 문제여서 공론화하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주간지들은 11일 일제히 이 사건을 크게 다뤘다.

주간문춘(週刊文春)은 동료 학생들이 아이코를 ‘오마에’라고 부르는 것은 예사라고 전했다. 오마에는 우리말의 ‘야 또는 너’ 정도의 의미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부르는 반말이다. 일본에서 왕실의 자녀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존칭으로 불린다. 이들의 행위도 모두 존댓말로 표현된다.

더 나아가 아이코는 개구쟁이 아이들에 의해 팔로 목을 조르는 ‘헤드록’을 당하기도 했다고 전해졌다. 신발장 근처에서는 뒤에서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수난도 당했다는 것이다.

주간신조(週刊新潮)도 ‘공주님이 등교하지 않는 진상’을 보도했다. 잡지는 일부 힘센 남자아이의 난폭한 행동과 학교 측의 불성실한 대응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 소식을 접한 일왕 부부가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라고도 전했다. 왕실에서는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아이코를 사립여자학교로 전학 보낸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이들 싸움’에 왕실이 적극 나서기도 곤란해 왕실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고 주간신조는 전했다.

사태가 이렇게 되면서 아이코가 다니는 가쿠슈인에 세간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유치원부터 초·중·고·대학 과정이 모두 있는 가쿠슈인은 당초 일본 왕족과 화족(귀족)들의 학교였다. 나루히토 왕세자가 다닐 때만 해도 왕족부터 출석을 부르는 등의 ‘특별 대접’은 전통이자 당연한 일이었다. 왕실의 검정 세단을 타고 등·하교하는 것은 물론이고 학교 측에서도 일일이 마중을 나왔다. 하지만 일본 사회가 권위주의에서 벗어나면서 지금은 이름순으로 출석을 부르고 있다.

아이코는 왕실에 히사히토가 태어나기 전에 한때 여왕 후보로 거론되기도 할 만큼 일본 사회의 주목을 받아왔다. 아이코는 이번 주부터는 왕세자비 마사코(雅子)의 입회 아래 하루에 한 시간씩만 등교 중이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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