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리뷰] '수운과 화이트헤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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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 책을 통해 보세가공품 아닌 순수 국산품인 동학(東學)에 대한 매력을 느껴보길 바란다. " 김상일(한신대 철학과)교수의 신간『수운과 화이트헤드』에서 인용한 이 구절은 어디서 한두 차례 들어본 느낌이 있다. 그렇다. 대중가수 조영남이 지난해 말 펴낸 신학서 『조영남 예수샅바를 잡다』의 맺음말이다.

"나도 내 어머니 김정신 권사님처럼 예수만 믿을 것이냐. 그건 아니다. 김권사님은 예수라는 보세가공품으로 충분히 행복했지만, 나는 석가나 공자나 소크라테스도 좋고, 후미진 곳에 틀어박혀있는 최제우 나철 전봉준 같은 국산품이 못내 불쌍해서 돌아서지 못한다. " (3백28쪽)

『수운과 화이트헤드』는 지난해 나온 『동학과 신서학(新西學)』(지식산업사)의 후속 연구서다. 조영남의 책이 예수의 삶을 조망하면서 한국인의 정체성 문제를 슬쩍 제기해 보았다면, 이 책은 서양의 철학자 알프레드 화이트헤드(1861~1947)와 수운의 신관(神觀)을 맞대면시키면서 동.서 종교문화의 변화 징후의 문명사적 맥락을 짚는다.

"제 생각을 갖지 못하는 우리 자신들에 대한 자탄과 한탄에서 나는 이 책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동학이야말로 세계적 사상이라고 확신한다. 수운과 화이트헤드의 이상적인 만남은 상호보완을 통해 세계철학을 창출할 것이다. "

일부 민족주의적 성향에 알레르기를 보일 독자도 있겠으나, 이 책은 수운의 사상을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순수학술적 작업이다. 그러면 과정철학은 무엇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서구의 형이상학인 이원론에 급브레이크를 건 이론. 그 때문에 동북아의 전통 사유와 친화성이 높다.

저자는 '신은 죽었다' 고 선언한 니체가 죽인 (인격)신, 그 이후의 새 지평을 비교철학의 방식으로 제시하려 한다. 조금은 어려운 책이지만, 국내 아카데미즘이 19세기 민족종교라는 광맥에 새롭게 주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가 괄목할 만하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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