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준화교육 4반세기] 2. 모두가 피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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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 반항아 영재의 항변

金모(20.서울 양천구)씨는 인터넷 토론방의 유명 논객이다. 사회에서 경제.정치문제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이다. 그의 글이 인터넷에 뜨면 네티즌의 반응은 열광적이다.

그렇지만 본업은 무직. 소위 백수다. 카페.PC방.만화방이나 돌아다니는 한량이다. 용돈이 떨어지면 공사판에 나간다. 집에서는 이미 '구제불능' 으로 내놨다.

그는 그러나 15년 전에는 '미래의 노벨상감' 으로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네살 때 한글과 알파벳을 완전히 익혔다. 백단위 덧셈.뺄셈도 척척이었다. IQ 1백40. 정부가 선발한 영재 1백44명 중 하나였다.

초등학교 때는 전교 1, 2등을 다퉜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M중학교에 입학한 그는 인터넷게임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었다. 자연히 일본의 PC게임.3D.음악믹싱 등에 빠졌다. 독학으로 일본어를 공부했다. 당연히 다른 과목은 성적이 떨어졌다. 수업시간에 들어오는 교사들마다 야단을 쳤다. 특정분야에 뛰어났지만 골고루 잘 하지는 못했던 그는 점차 학교에 흥미를 잃었다.

K고에 진학했지만, 평준화된 교육에서 낙오자가 됐다. "도시락 먹고 친구와 노는 재미" 로 다녔다고 했다. 고교 3학년 때는 대학에 진학할 뜻이 없다는 이유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만약 사회의 평가기준이 다양해서 내가 잘 하는 분야로 평가해줬다면, 하고 싶은 분야를 공부할 수 있는 제도였다면, 나의 인생은 바뀌었을 것" 이라고 그는 말했다. 전문적인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상급학교는 없었다. 있더라도 수능성적이 좋아야 한다. 그는 "말 그대로 전문대라면 일본처럼 학과가 최소 2백개 이상 세분화돼야 한다" 고 주장한다.

金씨는 스스로 학교 교육에 질식했다고 말한다. 현재의 학교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세뇌' 이며, "전인교육이란 뭐든 로봇처럼 잘하는 애들을 키우는 것" 이라고 했다. "수능은 얼마나 평준화가 잘 되었는가를 측정하는 시험" 으로 특이하거나 뛰어나거나 뒤지면 평준화 대열에서 낙오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친구들은 아직도 그를 '천재' 로 부른다. 그의 지적 욕구는 끝이 없다. 최근의 독서 리스트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서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에 이른다. 인터넷 토론방은 그의 유일한 지적 분출구다.

金씨는 연내 일본어 관련 자격증을 따기로 목표를 정했다. 학교라는 틀을 벗어났으니 이제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고교 졸업장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중.고교 6년을 허송한 느낌" 이라고 했다. 아직은 책이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학생신분이 아니어서 군 입대영장이 곧 나올 전망이기 때문이다.

결국 金씨는 특정분야에 뛰어난 재능과 뜨거운 의지를 가졌지만 평준화 교육이란 장벽을 넘지 못한 영재들 중 하나인 셈이다.

▶팀장 : 박종권 차장

▶강홍준.이후남.구희령. 강정현 기자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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