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강소기업에 배운다] 4. '대만의 실리콘밸리' 신주공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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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실리콘밸리를 연상케 하는 현대식 빌딩들이 줄이어 서 있는 신주(新竹)과학공업단지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설계 기술을 보유한 선플러스.리얼텍 등 378개 첨단기업이 입주해 있다. 대부분 작지만 남이 베낄 수 없는 기술을 갖춘 '강소(强小)'기업들이다.

신주과학공업단지관리국의 루환(陸)연구원은 "기술력을 엄격히 심사해 입주시키는데도 현재 대기 중인 업체가 80여개나 돼 20여분 거리에 위성 과학단지 네 곳을 추가로 조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그중 한곳은 이미 입주가 마감됐을 정도로 인기다.

신주공업단지는 1980년 처음 만들어진 아시아의 대표적인 첨단 공업단지다. 한국산업기술재단 김갑수 박사는 "대만의 국립연구기관인 공업기술원을 비롯해 이공계 인력들의 산실인 자오퉁(交通)대와 칭화(淸華)대 등이 인근에 모여 있어 첨단 기술인력의 공급이 원활하다"고 말했다(중국 베이징의 자오퉁.칭화대와 대만의 자오퉁.칭화대는 명칭과 한자가 똑같다).

먼저 생긴 일본의 쓰쿠바(筑波)과학단지나 나중에 생긴 한국 대덕단지와의 차이점은 연구개발 중심이 아니라 직접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이 중심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입주 기업들은 모두 생산라인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경제 기여도가 쓰쿠바나 대덕단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높다. 신주공단 입주기업은 대만 전체 정보기술(IT)산업 매출의 24.9%, 수출의 10%를 담당하고 있다.

신주공단에 기업들이 너도나도 들어오려고 하는 이유는 입주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특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주단지 관리국 루 연구원은 "토지는 모두 국영으로 20년간 거의 무상으로 임대해 준다"고 말했다.

설비를 담보로 하거나 개발한 기술만으로 대출받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연이자는 3~4%로 저렴한 수준이다. 심지어 재정부에서 파견한 세관이 신주단지에 입주해 원활한 수출업무를 위해 24시간 세관업무를 봐준다. 사회적인 인식도 매우 높다. 대만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교포 황현걸 사장은 "대만에서는 신주단지에 있는 기업체에 다닌다고 하면 일등 신랑감으로 인정받는다"고 말했다.

"용수시설과 잦은 지진문제가 걸림돌이긴 하지만 신주공단이 아시아에서 가장 성공한 산.학.연 클러스터인 것은 틀림없다"고 대만총합연구소 왕밍랑(王明郞)연구원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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