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회담 연기·불참… 판깨는 북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판문점을 통해 13일 날아온 북한의 회담 불참 소식을 접한 정부 당국자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연초부터 역설한 신사고(新思考)가 이런 모양새를 말하는 거냐" 며 볼멘 소리를 냈다.

올 한해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남북 모두의 기대에 북한 회담일꾼들이 찬물을 끼얹었다는 것이다.

북한측이 회담을 일방적으로 연기하거나 판을 깬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만, 金위원장까지 서명한 6.15공동선언 이행의 기본 틀인 장관급 회담을 뒤흔드는 것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북한은 1970년대 초 남북회담을 시작한 이후 수십차례에 걸쳐 이런 행태를 되풀이해 왔고, 지난해 정상회담 이후 크고 작은 회담과 실무접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지난해 6월 12일 열기로 합의했던 평양 남북 정상회담을 아무런 설명 없이 하루 늦췄다.

'경호상의 이유' 라는 설이 돌았지만 설득력이 없었고 공식 해명도 하지 않았다.

이같은 북한측의 '무례함' 은 결국 대북 포용 정책의 추진 과정에서 정부가 지나치게 무르게 평양측을 대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동복 명지대 객원교수는 13일 "북한이 하고 싶을 때나 회담을 하고 그들 멋대로 하는 데 대한 정부의 단호한 대북정책과 대북관이 필요하다" 며 "그들과 제대로 대화를 하고, 의미있는 결과를 거두려면 우리측 조건에 따라 우리의 멍석에서 회담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고 말했다.

박명서(朴明緖)경기대 교수는 "북한은 남북대화에서 일방적 연기나 불참으로 남측의 조갈증을 유발해 회담 주도권을 장악하려 들고 있다" 며 "대남(對南)협상에서 유일한 무기가 되다시피 한 이런 행태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 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에 사과를 요구하는 '전술적 대응' 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일각에선 제기된다.

하지만 효과도 없거니와 남북관계가 경직될 가능성을 들어 부정적인 견해가 지배적이다.

결국 앞으로 회담 진행 과정에서 북한의 행태를 면밀히 파악해 적절한 시점에서 짚을 것은 짚고 넘어가는 회담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영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