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지구를 생각하는 착한 디자인 여행 ④ 씹던 껌 재활용한 껌 수거통 보셨나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22면

런던 거리의 가로등에 붙은 검드롭빈. 씹던 껌을 녹여 만든 플라스틱으로 만든 이 통에 씹던 껌을 모으면 똑같은 통으로 다시 태어난다.

우리는 하루에도 많은 쓰레기와 오염물질을 만들어내죠. 심지어 인터넷 클릭 한 번에도 평균 7g의 탄소가 배출되지요. ‘인간이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어’라며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지구와 환경을 생각하는 디자이너와 건축가 사이에 전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는 책이 있습니다. 2002년 미국의 건축가 윌리엄 맥도너와 독일의 화학자 미하엘 브라운가르트가 쓴 ‘요람에서 요람으로’입니다.

눈을 들어 나무를 봅시다. 나무는 꽃을 피우고 푸른 잎과 열매를 맺으며 인간 못지않게 활발한 생명활동을 합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먹고살고 있다는 거죠. 가만히 살펴보니 신기하네요. 나무가 호흡을 하며 산소를 뿜고 이산화탄소를 들이마시고, 곤충을 유혹해 자손을 번성하는 과정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웁니다. 과일과 씨앗은 생태계에 영양을 공급하고 땅에 떨어진 나뭇잎은 퇴비가 되어 토양을 비옥하게 하지요. 하나부터 열까지 버릴 것 없이 인간과 자연을 풍성하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요람에서 무덤이 아닌 ‘요람에서 요람으로’의 순환입니다. 인간의 활동 또한 이럴 수 없을까요? 우리의 생명유지와 생산활동에서 비롯되는 부산물이 결국 쓰레기로 끝나지 않고 유익한 순환으로 거듭된다면요.

요즘 부쩍 화제에 오르는 제로 에너지 하우스는 석유와 석탄·가스 등 써서 없애는 화석연료가 아니라 바람과 태양 등 지속가능한 자원을 통해 전기에너지를 자체 생산해 사용합니다. 빗물을 정수해 사용하고, 지표면보다 온도가 높은 지열을 활용해 난방을 합니다. 실제로 영국의 런던 근교에 새로 지은 DIY 브랜드 비앤큐(B&Q) 건물이 이런 방법을 동원해 지었습니다. 자연의 순환법칙에 순응하는 에너지 시스템입니다.

런던 시내 몇 곳에 시험적으로 설치된 핫핑크색 공이 눈에 띕니다. 거리의 가로등과 전봇대, 공원의 나무 등에 앙증맞게 매달려 있습니다. 행인들이 씹던 껌을 버리는 검드롭빈(www.gumdropbin.com)이라는 이름의 껌 수거통입니다. 겉보기에 평범한 플라스틱인데 실은 씹던 껌을 녹여 만든 재생 플라스틱이라는 점이 획기적입니다. 런던의 번화가 옥스퍼드 스트리트 위에 버려지는 껌이 하루에만 3만여 개인데 이를 그냥 버리면 쓰레기장 행이지만 통에 모으면 그대로 다시 녹여 계속해서 또 다른 껌 수거통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인간의 기호활동이 주는 즐거움을 해치지 않으면서 자원의 순환을 유도하는 착한 디자인의 완벽한 예입니다.

이탈리아 토리노의 커다란 유기농 식품점 이탤리(Eataly)의 장바구니와 쇼핑카트는 푸른 빛을 띠는 투명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카트를 세워두는 주차장에 가니 버려진 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장바구니와 카트의 디자인에 대한 설명이 씌어 있네요. 페트병 23개는 장바구니를, 75개는 작은 카트, 250개는 큰 카트 하나로 태어나는 데 쓰이는 양입니다. 플라스틱은 잘 썩지 않아서 공해의 주범이기도 하지만 비교적 쉽게 재생이 가능한 재료이기도 합니다.

즐겁게 삶을 누리면서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고 풍성한 미래를 위한 시도에 착한 디자인이 더해져 아름답게 순환합니다. 사람이 살면서 쓰레기를 안 만든다는 게 말이 되니? 하고 반문하는 우리의 눈에 쓰레기로 보이던 껌과 페트병의 변신은 무릎을 탁 치도록 유쾌한 반전입니다. 인간의 선한 의지와 무한한 창의력에 대해 기대가 부풀어 오릅니다.

디자이너 박규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