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1. 샛강<1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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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학교에 가서 내가 겪은 첫 번째 경험은 '나 아닌 것들'이었다. 운동장에서 담임 선생님과 교실을 배정받았다. 담임은 여선생이었는데 나중에 대구로 피란 가서 그이를 다시 만나게 된다. 키가 크고 살결이 하얀 이십대 말의 여선생은 아마도 진작에 시집을 갔을 것이다. 그녀가 호각을 불면 우리가 모두들 목청을 합쳐 병아리처럼 숫자로 구령을 붙였다. 교실에 가서 자리에 앉았을 때, 나는 아이들의 소음에 휩싸였다. 나는 거울을 보며 내 얼굴에 익숙해 있었다. 그들은 제각기 너무나 이상하게 다르게 생겼고 목소리도 제각각이고 잠시도 가만있지 않았다. 어떤 아이는 벌써부터 엄마를 찾으며 울고, 어떤 애는 서로 때리며 싸우고, 또 어떤 놈은 제 마음대로 남의 것을 가져가기도 했다. 나는 두 귓구멍에 손가락을 찔러 넣고 꼭 막아 보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소리 없이 움직이고 웃고 우는 꼴이 더욱 이상했다. 손가락으로 귀를 막았다가 열었다가 하니까 웅웅대는 소리가 마치 기계 돌아가는 소리 같았다.

집에 돌아가자 어머니에게 학교에 가기 싫다고 말했다. 어째서 가기 싫으냐고 그녀가 묻자 나는 말했다.

-모르는 애들이 너무 많아요.

-앞으로 모두 친구가 될 거다. 학교가 원래 그런 곳이야.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길은 제법 먼 길이었다. 우리 동네에도 해방 뒤에 새로 생긴 초등학교가 있었지만 어머니는 일제 때부터 오래된 학교로 보냈다. 그리고 어머니는 교장선생의 부인과 선후배 사이였다고 한다. 집에서 출발하면 먼저 영등포 역전까지 곧장 나아가 지금도 그대로인 역전 네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꼬부라진다. 그리고 무슨 공장인지는 잊었는데 아이들이 일본 말로 '마루보시'라고 지금은 무슨 맥주 공장이 되었다나 하는 곳의 담장 끝 자락과 방직 공장 사이의 한길로 나아가 문래동 입구에서 길을 건너면 우리 학교였다. 붉은 벽돌의 이층 교사가 여러 채 서 있었다. 그 교사는 몇 달 다녀 보고는 전쟁 뒤에 온갖 들판과 무너진 공장 건물과 임시 가교사를 전전하다가, 육학년 때에 겨우 한 겨울 다니고는 졸업을 했으니 채 일년도 들어가 보지 못한 셈이다. 큰 길을 따라 걷던 것은 전쟁 전까지 몇 달이 끝이었다. 나중에 지름길을 알아내어 질러가던 길이 더욱 재미있는 곳이었다.

학교에 간 지 아마 두어 달도 채 못 되었을 때였다. 이른 아침에 엄청나게 큰 우레 소리가 몇 번이나 들리더니 어른들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변했다. 학교에 갔더니 선생님이 그날은 일찍 돌아가라고 했다. 영등포 역 앞에 이르렀는데 사람들이 갑자기 흩어지기 시작했고 가까운 소방서에서는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그맘때 사이렌 소리는 정오와 자정을 알릴 적에도 울렸다. 비행기의 프로펠러 소리가 요란했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아저씨가 가로수 밑에 가서 자전거를 세우더니 손짓을 하며 나를 불렀다.

-얘얘, 일루 와서 피했다 가거라. 총 맞는다!

그림=민정기

*** 바로잡습니다

10월 26일자 19면 황석영 자전소설 '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의 연재 일련번호는 19회가 아니라 18회이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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