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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개혁 어떻게 할것인가]2. 음반 유통구조가 문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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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1990년대 이후 가장 음반을 많이 판 가수는 조성모다.1998년 데뷔한 뒤 네장의 음반을 발표,모두 합쳐 8백20여만장을 판 것으로 추산된다.

조성모의 사례를 든 것은 그의 음반 판매량이 많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그저 그런 가수도 아니고 대표적인 베스트 셀러 가수인 그의 음반 판매량조차 ‘추산된다’는 용어를 사용해야 하는 음반업계 현실을 말하기 위해서다.

자동차 등 일반 공산품과 달리 왜 음반은 대형 스타들조차 정확한 판매량을 대지 못하는 것일까.음반유통구조가 투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재 외국 음악은 대부분 유니버설·워너 등 초대형 외국 음반사가 한국에 설치한 직배사가 자체 유통망을 통해 배급하고 있다.유통과정과 판매량 집계가 비교적 투명하다.

문제는 가요 음반이다.일반적으로 가요 음반은 음반제작사-도매상-소매상의 세단계 유통 과정을 거쳐 소비자의 손에 들어간다.

현재 가요 음반유통은 신나라·도레미·예당 등의 업체가 주로 맡고 있다.이들은 음반 제작·유통은 물론 기획과 가수 매니지먼트도 하는 가요계의 큰 손들이다.

특히 신나라는 60%가 넘는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상위 3개사의 시장점유율을 합치면 80%를 넘어설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90년대초부터 업계 최초로 자체 소유 화물차,고속버스 운송망 등을 이용해 전국 곳곳 소매상까지 음반을 신속하게 배급하는 등 유통망 장악에 노력해온 신나라는 국제통화기금(IMF)사태로 많은 도매상들이 도산하는 과정에서 꾸준히 시장점유율을 높여 확고한 아성을 쌓았다.

종교 단체에서 시작한 업체라는 특성상 열성적이면서도 저렴한 노동력을 쉽게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현재 통신사를 비롯한 상당수 매체들이 매달 신나라가 발표하는 음반판매량을 인용해 인기 가요 명단을 보도하고 있을 정도로 신나라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문제는 신나라를 비롯한 주요 음반유통업체들의 납품 관행이 투명하지 못하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중음악 개혁을 올해의 역점 사업으로 정해 연중 정기 포럼을 개최하고 있는 문화개혁시민연대(공동대표 도정일)는“거래가 전부 수거래로 이뤄져 정확한 전산 집계가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특히 소매점과의 무자료 거래를 남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의혹은 일반소비자들에게도 확산돼 최근엔 “어떤 어떤 가수들의 음반을 사면 그들이 아니라 다른 특정 인기 가수의 판매량으로 집계된다”는 루머가 광범위하게 떠돌고 있다.사실 여부를 떠나 음반판매량 집계에 대한 소비자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에 대해 신나라측은 “96년 세무조사 이후 무자료 거래는 없으며,전산화 등 투명한 유통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시장점유율이 높은 것은 오랜 노력의 결과이며 일본도 3개 유통사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아무튼 현실적으로 음반유통시장의 독과점과 불투명성에 따른 부작용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소매상의 불만이다.음반시장 위축과 대형판매점 확산 탓에 최근 3년 사이 전국적으로 숫자가 절반으로 줄어든 소매점들 가운데 상당수는 “화제가 되는 인기 가수 새 음반의 경우 충분히 공급하지 않거나 반품 불가 등의 조건을 내걸고 납품하는 등 유통사의 횡포가 있다”고 주장한다.

또 대형 음반유통사에 음반유통 대행을 의뢰하는 중소 음반제작업체들은 "정확한 음반판매량을 알 길이 없어 음반 빼돌리기 시비가 종종 일지만 대처할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소규모 독립음반사들의 경우 아예 음반을 판매할 수 있는 길이 막혀있다는 것이다.

대형 유통업체들이 별로 팔리지도 않고 관리만 귀찮은 소량 판매 앨범을 철저히 외면하기 때문이다.

결국 인디 밴드 등 독립음반사의 실험적인 음반은 일선 매장에 진열될 기회조차 없고 이런 상황에서 다양한 음악 발전은 요원하다.

지상파 방송사 가요 순위 프로그램의 순위 결정이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큰 이유도 음반판매량 집계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음악평론가 송기철씨는 “음반유통구조 투명화는 하루이틀 사이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정확한 과세를 위한 정부 당국의 감시 강화와 다양한 유통망 모색을 위한 중소 음반업체들의 노력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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