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 젊은이 4인방 "삽살개 혈통 보존 앞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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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그대로 누워 있어. "

훈련사의 한마디에 삽살개 '순돌이' 가 죽은 듯 땅바닥에 눕는다. 하지만 장난꾸러기 순돌이가 그냥 있을 리 만무하다.

실눈을 뜨고 주위를 힐끗 살펴본 뒤 훈련사 가슴에 펄쩍 뛰어 안긴다. 견사 입구에서 작은 송아지만한 '거발한' 은 취재진을 보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다. 반갑다는 표시란다.

경북 경산시 하양읍 대조리 삽살개 농장. 3천여평의 이 농장은 천연기념물 제368호인 삽살개가 보존.육성되는 집단 사육장이다.

사육장은 새끼를 낳았거나 낳을 모견(母犬)50마리와 새끼 50여마리가 살고 있는 산실(産室), 훈련장, 성견(成犬)5백마리가 있는 견사(犬舍)로 되어있다.

농장 소장 韓국일(34.경북대 대학원 유전공학과 2년)씨는 삽살개의 혈통을 지키는 파수꾼임을 자임한다. 韓씨의 일과는 고행 수준이다.

오전 6시30분부터 1시간, 오후 6시부터 1시간 동안 개들이 먹을 밥을 일일이 직접 챙긴다. 강아지들은 낮 12시에 점심을 따로 먹인다. 영양상태가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시간엔 길게 자란 털을 깎아주고 빗질도 해준다. 개똥 치우기에 적지 않은 시간이 들어간다.

"한두마리도 아니고…. 개가 사랑스럽지 않다면 못하겠지요. "

훈련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과다. 굴렁쇠 통과, 엎드려 기어가기, 서서걷기, 누워있기….

"사람이나 개나 똑같습니다. 교육을 받은 개들은 훨씬 다루기가 쉽고 사람 말도 잘 알아듣지요. "

밤이라고 제대로 잠을 잘 수 없다. 개들은 주로 새벽에 새끼를 낳기 때문이다. 지난 4일 새벽에도 모견 두마리가 새끼 열마리를 낳았다.

난산일 경우 분만촉진제를 주사하고 밤새 지켜보다가 손으로 직접 새끼를 받기도 한다. 산실에는 폐쇄회로TV 카메라 6대가 설치돼 있다.

관리사무소에 앉아 산실을 지켜보다가 일이 생기면 곧장 뛰어가기 위해서다. 열성 유전자를 가진 개를 거세하거나 도태시키는 것도 그의 몫이다. 물론 순종 삽살개를 보존하기 위해서다.

전남 무안 출신으로 전남대에서 농생물학을 전공한 그가 삽살개 농장의 소장이 된 것은 2년 전. 관리소장을 뽑는다는 얘기를 듣곤 한걸음에 달려왔다.

그와 개와의 인연은 대학 시절 광주 개훈련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시작됐다.

해병대에서 군 복무를 할 때는 자원해 군견병이 됐다. 1994년 대학 졸업 후 전국의 개 훈련소에서 일을 했다. 98년에는 한국애완동물보호협회로부터 공인 1등 훈련사 자격증까지 받았다. 취미로 한 일이 직업이 된 것이다.

개를 쫓아다닌 지 10여년. 결혼을 약속한 사람도 있었지만 독특한 직업 때문에 헤어져야 했다.

韓소장은 "귀여운 삽살개가 있어 아픔을 빨리 잊을 수 있었다" 면서 "개와 결혼한 것으로 봐달라" 며 멋적게 웃었다.

韓소장은 삽살개를 연구해 동물유전학 박사학위를 취득한다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그와 함께 삽살개 파수꾼으로 일하는 동지들은 경북대에서 시간제 학생으로 유전공학을 공부하는 李창규(29).金양수(21)씨와 직원 1명 등 모두 3명이다.

여기에 지난달 초 겨울학기 실습을 나온 경북대 金정호(26.전기전자공학부 4년)씨도 일을 거든다.

전문대 출신인 李.金씨는 농장에 취직해 삽살개를 돌보며 유전공학을 공부한다.

李씨는 "천연기념물을 지킨다는 자부심에 힘든 줄 모르겠다" 고 말했다.

실습생 金씨는 "농장 실습이 5학점짜리여서 학점만 보고 도전했다가 매우 고생하고 있다" 며 "개들이 너무 귀여워 보람도 크다" 며 즐거운 표정이었다. 韓씨와 李.金씨는 아예 견사 옆에 사택을 짓고 생활한다.

삽살개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92년 3월. 전 경북대 수의학과 河성진(82)교수 등이 삽살개의 수집.보존에 나선 지 30년 만이다.

河교수의 아들인 경북대 河지홍(49.유전공학과)교수가 85년 부친에게 물려 받은 8마리의 삽살개를 이 농장에서 9백마리로 늘려 놓았다.

농장주인인 河교수는 "삽살개 복원은 전통견의 혈통을 찾아내고 이어가는 작업" 이라며 "정서.문화.경제적인 측면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고 말한다. 92년 8월엔 사단법인 한국삽살개보존회도 설립했다.

천연기념물을 지키는 젊은이들. 그들의 땀방울이 삽살개 농장을 한국 동물 육종학의 중요 거점으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경산=홍권삼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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