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이창호 잉창치배서 명예회복 별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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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잉창치(應昌期)배 세계대회가 이창호의 기분을 바꿔줄 보약이 될 수 있을까. 이창호9단이 잉창치배 우승 초읽기에 들어갔다. 14일부터 중국의 청두(成都)에서 나머지 결승전이 재개된다.

현재 2연승하고 있으니 한판만 더 이기면 우승이다.

더구나 상대는 총전적 13승1패에 12연승을 기록중인 중국의 창하오(常昊)9단. 상황이 이처럼 유리하고 상대도 만만해 40만달러의 우승상금은 이창호의 지갑 속으로 이미 들어간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이 대회를 앞둔 이9단의 감회는 전과 크게 다르다. 이9단은 대국 때 외에는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조용히 중국으로 떠났다.

"아마도 심기일전의 한판승부가 되지 않을까요. 요즘의 이창호는 아무튼 전과 다르거든요. "

한국기원 동료기사들의 말이다. '지지않는 소년' 이란 이름으로 바둑계에 나타난 이래 세계를 휩쓸며 무적군단으로 자리잡았던 공포의 이창호, 그가 지난해에는 세계대회에서 단 한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춘란배는 첫판 탈락. LG배는 준결승전에서 탈락. 후지쓰배와 삼성화재배는 2회전 탈락. 이것이 2000년 이창호9단의 세계대회 성적표다. 아시아 TV대회선 결승까지 올랐다가 미끌어졌다.

메이저급 세계대회에서만 11번이나 우승해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강자가 된 이9단이 25세 한창 때인 지난해 갑작스런 슬럼프를 맞이한 것이다.

그 원인에 대해선 온갖 설(說)이 무성하지만 "이창호가 세상사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고 그로 인해 집중력이 떨어졌다" 는 해석이 현재로선 가장 유력하다.

이창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밤 늦게까지 하루도 빼지 않고 공부를 계속해온 사람이었다.

그는 단 한번도 바둑을 지루하다고 느끼지 않았으며(이런 특이한 재능이 있을까!) 꿈속에서도 바둑을 생각했다고 한다.

이런 이9단이 언제부턴가 바둑 승부에 모종의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고 당연히 집중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더이상 얻을 게 없는 최강자들의 행로, 즉 '인생을 알면 승부가 약해진다' 는 전통적인 절차를 그도 밟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바람에 2000년 MVP마저 신예강호 이세돌3단에게 내줘야 했던 이창호는 올해 들어서도 승률이 반타작(5승4패)에 그치고 있어 한국은 물론 중국과 일본에서조차 이창호가 언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설지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그 고비가 應씨배 결승전일까. 아마도 그럴지 모른다. 우승은 거의 기정사실이지만 일단 우승하고 나면 몸도 마음도 새로워질지 모른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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