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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대도 회사일인데 마누라님은 인상만 팍팍 써요”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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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호 22면

어제는 간만에 골프장에 나갔어요. 회사 상사인 김 부장과 함께 거래처를 접대하는 자리였어요. 마누라님은 주말에 골프장에 나간다는 소리를 듣고 또 바가지를 긁어요. 거래처 접대는 엄연히 업무의 연장인데 마누라님은 인상만 팍팍 썼어요. 이럴 땐 마누라님이 무서워져요. 새벽 5시쯤 자명종 소리에 놀라 잠을 깼어요. 마누라님이 행여 잠을 깬다면 타이거 우즈처럼 두들겨 맞을지도 모르겠어요. 잽싸게 몸을 날려 자명종을 끄고는 어둠 속에서 옷을 갈아입어요. 절대로 불을 켜서는 안 돼요. 마누라님이 주무시는데 불을 켰다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요. 까치발을 한 채 살금살금 집을 빠져나와요. 바깥엔 여전히 어둠이 깔려 있지만 해방감이 몰려와요. 승용차에 옷가방을 싣고 출발하려는 찰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차를 발견해요. “이런~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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낑낑거리면서 내 차를 가로막고 있는 차를 밀어야 해요. 꼭두새벽에 도와줄 사람도 없어요. 골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마에 땀이 흘러요. 드디어 출발이에요. 새벽 고속도로는 한산한 편이에요. 만날 고속도로가 이랬으면 좋겠어요. 돌아올 때도 이렇게만 잘 빠진다면 마누라님한테 혼나는 일은 크게 줄어들 거예요. 내비게이션을 보면서 다시 시간을 확인해요. 이런, 조금 일찍 만나서 아침식사를 같이하기로 했는데 늦을 판이에요. 액셀러레이터를 밟은 발에 힘이 들어가요. 아, 이제 거의 다 왔어요. 골프장 표지판이 보여요. 안도감이 몰려와요.

열쇠를 받아들고 라커룸으로 향해요. 잽싸게 옷을 갈아입으면서 얼굴에 선크림을 발라요. 밥은 건너뛰더라도 선크림은 목숨 걸고 발라요. 요즘 들어 눈에 띄게 얼굴에 주름살과 기미가 늘어난 것 같아요. 식당엔 김 부장이 벌써 도착해 있어요. 겉으론 웃지만 ‘쫄따구’가 늦게 왔다고 화가 났을 가능성이 99.9%예요. 먼저 ‘선빵’을 날려요.

“다들, 일찍들 나오셨네요. 역시 베테랑답게 매너도 짱이시군요.”
밥이 어디로 넘어가는지도 모르겠어요. 우거짓국에 만 밥을 남겨둔 채 카트로 이동이에요. 캐디가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어요. 안 해도 되는데 꼭 몸풀기 체조를 따라 하래요. 초딩이나 하는 바로 그 국민체조 말이에요.

“그래도 우리가 오랜만인데 스킨스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거래처의 최 이사는 항상 저런 식으로 이야기해요. 차라리 내기 골프를 해서 내 돈을 따먹고 싶다고 말하면 밉지나 않을 거예요. 그래도 애써 미소를 지으면서 스킨을 하기로 해요. 우물 수심도 얕은데 스트로크가 아닌 게 다행이에요.

1번 홀, 김 부장이 티샷 ‘쪼로’를 냈어요. 그 폼에 그 정도만 해도 다행이다 싶어요. 이번엔 거래처의 최 이사예요. 온갖 무게란 무게는 혼자 다 잡더니 OB를 냈어요. “앗싸라비야~.” 하느님은 내 편인 것 같아요. 그런데 김 부장이 크게 외쳐요. “멀리건!” 아, 아무리 거래처라곤 하지만 이건 아닌 것 같아요. 미국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에요. 그래도 꾹 참고 멀리건을 권해야 해요.

1번 홀 스코어는 제각각이에요. 나 혼자만 보기, 나머지 세 사람 스코어는 무슨 김연아 점프 기술 같아요. 더블, 트리플, 트리플 이래요. 그래도 김 부장은 보기로 써달라고 우겨요. “언냐, 1번 홀은 올 보기 알지. 아니 일파만파면 더 좋은데.” <2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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