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노트] 조계종 총무원 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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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불교용어에 '자자(自恣)와 포살(布薩)' 이란 말이 있다.

'자자' 는 자아비판, 포살은 상호비판이다. 묶어서 '자자와 포살' 이라면 스님들이 안거(安居) 마지막 날 밤에 벌이는 한바탕 뒤풀이 행사를 말한다.

불교에서 가장 중시하는 큰 행사를 마치는 시점에서 마지막으로 잘못이 없었는지를 '비판' 이란 형식으로 점검한다는 취지가 매력적이다.

당연히 동안거 마지막 날인 지난 6일 전국의 산중 선원에서 뜨거운 '자자와 포살' 이 벌어졌다. 그런데 올해에는 서울 한가운데 조계종 총무원에서 주목할만한 '자자와 포살' 의 모습이 연출됐다.

총무원장이 평신도들의 비판을 받아들여 4개월전 자신이 임명한 기획실장을 해임한 사건이다. 평신도들의 요구에 따라 승려의 인사가 좌우된 것은 불교계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초유의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과정과 배경은 간단치 않다.

확실한 것은 기획실장으로 임명된 스님이 3년전 도박사건으로 유죄선고를 받았던 인물이고, 평신도 모임인 재가연대가 이를 문제 삼아 사퇴를 촉구해왔다는 점이다.

사퇴요구를 외면해오던 총무원은 재가연대의 시위를 앞둔 시점에서 사표를 수리했다. 경과를 보자면 총무원이 재가연대의 요구에 내키지 않는 결정을 한 셈이다.

사실 출가한 승려 집단이 평신도 보다 높은 위치에서 대우를 받아온 것은 불교계의 오랜 관행이다.

교리상으로도 승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계승한 신분으로, 평신도가 귀의(歸依)해야할 삼보(三寶:부처.경전.승려)의 한 축이다.

총무원 일부에서 "감히 평신도들이 스님 인사에 개입하느냐" 는 불쾌감을 보인 것은 이런 관행에서 나온 반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신도의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은 일차적으로 사퇴요구의 명분이 뚜렷했기 때문일 것이다.

동시에 간과해선 안될 부분은 평신도들의 목소리가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커지고 조직화됐다는 사실이다.

스님들이 내부다툼으로 제자리 걸음을 하는 동안 지식인 평신도들이 늘어났고, 이들은 NGO로 조직화됐다.

'자자와 포살' 의 정신이 평신도들의 성장을 받아들이는 출가자들의 지혜로 활용되어야하는 시대가 됐다.

오병상 문화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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