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수도이전 특별법 위헌' 기획 시론

1. 관습헌법 중시한 결정은 정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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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말썽 많던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이 위헌결정되었다. 헌법재판소는 8대 1이라는 압도적 다수로 신행정수도건설법은 국민의 참정권인 국민투표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해 위헌이라고 결정, 정치적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헌법재판관들의 다수의견은 수도 서울은 국민의 법적 확신이 결집된 600년래의 관습헌법에 속하는 것으로 이는 자명한 불문헌법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수도 이전 여부는 헌법적 사항으로서 헌법 개정으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경국대전 이래 수도가 서울이었던 것은 국민적 합의였으며 이는 현행 헌법 개정 이전부터 내려오는 헌법관습이었기에 국회의 법률제정만으로는 불가능하고 헌법 개정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이제까지 헌재가 실정법 위주의 해석을 주로 해 왔는데 국회가 만든 법률에 상위하는 관습헌법을 인정한 것은 획기적이라고 하겠다. 소수의견이 대의제 민주정치를 더 중시해야 한다고 하나 관습헌법의 헌법적 합의를 더 중시한 헌재의 다수의견은 정당하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국회의 위헌 입법을 견제하고 헌법을 준수해야 하는 헌법 수호 기능을 다한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관습헌법상의 수도를 국회 다수결로 이전할 수 있다는 정치권의 야합 내지 선거전략을 배척하고 국민의 합의를 더 중시한 것은 옳은 태도다.

여권과 충청권에서는 헌재의 결정에 대하여 부정적이겠으나 정부와 여당, 국회의원들은 헌재의 결정에 승복해야 한다. 헌재는 수도 이전 자체를 방해하거나 반대한 것이 아니고, 수도 이전을 하려면 헌법 개정을 해야 하며 헌법 개정을 하려면 국민투표에 회부해 국민의 합의를 얻어야 한다는 것을 명백히 한 것이다. 관습헌법상 수도인 서울을 옮기려고 한다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실정 헌법에 이를 규정하고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에 회부하라는 명령인 것이다.

이번 헌재의 결정은 국회의 자의적인 졸속 입법에 대한 경고라고도 하겠다. 국회가 정치적 목적에 따라 다수결로 헌법사항을 법률로 정하는 것은 입헌주의에 위배되는 것임을 명백히 했다.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공청회나 적법한 청문 절차 없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법률을 다시는 제정해서는 안 된다. 국회는 국민의 기본권에 관한 사항을 명령으로 위임하는 위임 입법을 양산하고 있는데 이것도 국민의 기본권 침해라고 할 것이다.

이제까지 행정권이나 정치권이 헌재의 결정이나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번 결정은 이에 대한 경고적 의미도 있다고 할 것이다. 헌재나 법원이 헌법을 수호하고 법치 행정을 담보하기 위해 정부.여당이 바라지 않은 판결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에 대해 헌법보장제도나 법률보장제도의 본질을 무시하고 인신 모욕적인 평가를 해 왔는 데 대한 하나의 교훈적 결정이라고 하겠다.

헌재는 여야의 정쟁을 막기 위해 도입돼 있다. 첨예한 이론이 대립하는 입법이나 정책결정이 국회에서 강행 의결되어도 그것이 헌법에 위반되는 경우에는 헌재가 위헌 무효를 선언할 수 있는 점에서 헌재의 기능 강화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지난번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의 경우 헌재가 국회의원 선거의 결과를 다수의 민의가 반대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탄핵을 결정하지 않은 데 대해 많은 비판이 있었다. 그러나 헌재는 이번 위헌 결정으로 어느 정도 명예가 회복된 감이 있다.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은 이미 효력을 상실했다. 이 법을 계속 집행하는 것은 불법행위다. 정부가 행정수도를 옮기려면 헌재가 결정한 대로 헌법을 개정해야 할 것이요,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에서 국민의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할 것이다.

김철수 명지대 석좌교수.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