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 비리 몸통 겨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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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질을 떨어뜨려 국가의 지적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중대한 범죄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24일 전국 검찰청에 교육 분야에 대한 엄정 수사를 지시하면서 교육 비리를 이같이 규정했다. 향후 검찰 수사가 강도 높게 전개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검찰이 교육 비리에 대한 내사에 착수한 것은 지난해 하반기부터다. 대검찰청은 지난해 9월 전국 검찰청에 “구조적·고질적 부패범죄를 철저히 단속하라”고 지시했다. 김 총장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 “숨은 비리와 신종 부패에 수사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서울시교육청 수사 등을 통해 장학사 선발 비리에 가담하거나 학교 공사와 관련해 금품을 수수하고 교비를 횡령한 교육계 인사들을 적발했다. 지금까지 모두 17명을 구속하고 1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앞으로는 수사의 폭이 더욱 넓어지고 그 강도 역시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3일 국무회의에서 “교육 비리 척결에 전력을 기울여달라”고 강조하면서다. 대검의 한 간부는 “교육 개혁에 대한 국민의 여망이 확인된 만큼 초(超)고강도 수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검찰이 정한 중점 수사 대상들은 교육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비리를 가리키는 것이다. 교육예산·교비·연구비와 납품·공사 등 학교에서 쓰이는 돈과 관련된 문제뿐 아니라 교수·교직원 채용, 학생 선발까지 포괄한다는 점에서 가히 ‘전방위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검찰은 특히 교육 비리의 유형이 다양화되고 토착화돼 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검찰 조사를 받은 수사 대상자들을 보면 재단 이사장·교장·교사 등 학교 관계자뿐 아니라 교육청 국장·과장, 장학사, 심지어 시의원까지 포함돼 있다. 검찰 관계자는 “정치권 수사 등으로 인해 교육 비리가 뒷전으로 밀리면서 이 분야의 부패가 사회 각계로 뿌리내린 상황”이라며 “수사 과정에서 누가 튀어나올지 가늠하기 힘든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상납 고리의 끝에는 정·관계 고위 인사가 있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몸통’을 잡지 않는 한 비리 재발 가능성을 없애기 어렵다는 게 검찰의 기본 인식이다.

이에 대해 교육 비리의 특성상 수사가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만만치 않다. 검찰에는 “‘피해자 없는 범죄’로 불리는 뇌물 수사보다 힘든 게 교육 비리 수사”라는 말이 있다. 교육계 내부에서 비리가 드러날 경우 돈을 주고받은 사람 모두 형사 처벌과 함께 직위까지 잃게 된다. 그래서 아무도 입을 열려고 하지 않고, 수사의 단서를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고 한다. ‘꼬리 자르기’에 막혀 윗선 수사로 나가지 못한 사례도 많았다.

하지만 검찰은 수사 여건이 과거 어느 때보다 우호적이란 점에서 비리 척결을 자신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와 국민권익위원회가 각각 교육계 비리를 근절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 구성에 들어간 상태다.

검찰 관계자는 “일단 단서가 확보되면 온갖 범죄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쏟아져 나오는 게 교육 비리의 또 다른 특징”이라며 “서울시교육청의 ‘장학사 매관매직’ 관행이 밝혀진 것도 장학사들 사이에 일어난 단순 폭행 사건 때문 아니었느냐”고 말했다. 그는 “그간의 내사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둔 만큼 수사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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