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근 전북지사 방북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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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나는 지난 1월 31일부터 2월 3일까지 북한의 초청을 받아 평양에서 열린 '춘향전' 관람길에 나설 수 있었다.

내가 맡고 있는 직책 때문인지 방문에 앞서 일말의 기대감을 갖고 북한 경제난을 도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북한이 경제위기를 자력으로 극복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것쯤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게다가 북한의 일방적인 의사결정이나 일정결정 등으로 인해 외자 및 기업유치가 순탄치않은 것도 사실이다.

국가관리제도나 의식개혁.사회적 관행 등 소프트웨어가 새롭게 변하지 않고 단지 새로운 과학기술 도입이나 경제원조만으로는 북한의 경제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리 없다.

이런 생각을 갖고 평양을 방문한 결과 실망과 기대를 동시에 느꼈다.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중국 상하이(上海)의 경제발전상에 깜짝 놀라고 북한 관계자들에게 신사고를 강조하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평양 방문기간 중 내가 만난 북한 지도층 인사로부터 이런 신사고 조짐을 뚜렷하게 받지 못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전라북도와 북측 민족화해협의회가 세차례 협의를 갖고 원활하고 실질적인 교류확대를 위한 창구를 개설하는 데 합의한 점은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지자체로서는 처음으로 문화.체육.경제분야의 교류협력사업 추진을 위한 의향서를 작성.교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초 예상보다 수월하게 의향서에 서명할 수 있었던 것은 북한이 金위원장의 중국방문 이후 남북 교류협력에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임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북한의 이러한 변화가 실질적인 사고의 전환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평양 국립민족예술단의 '춘향전' 을 관람하고 북측 인사들과 대화를 하면서 긍정적인 면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유익했다고 생각한다.

우리측에서는 그동안 북한이 체제유지를 위해 순수예술까지도 정치선전화.도구화하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있었으나 이번 공연은 이런 오해를 불식시키는 계기였다.

'춘향전' 의 스토리 전개에 있어 계급사회의 신분격차로 야기된 문제를 좀더 강조했을뿐 본질적인 내용과 사실 표현에서는 남북간에 큰 차이가 없었다고 본다.

북한 주민이 우리측의 창무극 춘향전을 관람하고 깊은 감동을 받는 모습에서나, 우리 일행이 북측의 가극 공연에 공감하는 모습에서 남북한 주민의 감정과 정서에는 큰 차이가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같은 민족동질성에 대한 느낌이 통일에 대한 희망적인 기대감을 갖게 했다.

유종근 <전북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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