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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익의 인물 오디세이] 출판인 조상호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예전 1960, 70년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존경하는 인물' 조사에서 남학생은 이순신.슈바이처, 여학생은 유관순.나이팅게일을 단골로 써놓곤 했다.

요즘은 이들을 포함해 빌 게이츠.박찬호.서태지.박세리 등이라고 답하지 않을까 짐작한다.

이순신.유관순 유의 역사적 가치는 대의명분 앞에 초지일관 자신을 희생해 후세를 기약하는 것이었다.

반면 빌 게이츠나 박찬호 유는 동시대인들에게 편의와 용기와 오락을 선사해 그것들을 통해 당대에 개인의 부와 명예를 동시에 움켜쥐는 것을 역사적 가치라고 여기는 것일 듯하다.

기존의 고정된 질서를 해체하고 개인이 바로 세계의 중심이라는 포스트 모던 시대에 한 개인이 스스로의 가치 중심을 이순신에 두든, 박찬호에 두든 그것이 우리 사회에 순기능으로 작용하는 한 각자의 선택은 등가(等價)가 된다.

최근'마키아벨리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신간을 보면 마키아벨리를 기준으로 인간을 '마키아벨리를 닮은 사람' 과 '그렇지 않은 사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을 둘러싼 조건을 냉철하게 직시하고 거기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거짓말조차 선(善)이라고 보았다.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속에서 '마키아벨리를 닮는 것' 이야말로 세속적 성공을 담보하는 필요조건이라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실제 동서고금의 현실은 '마키아벨리 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 이 마키아벨리적 인간들과의 대척점에서 어쩌면 마키아벨리적 인간들을 위해 강제된 도덕적 부역에 시달리다가 "왜 착한 사람들은 실패하는가" 라는 울분을 토하다 사라져간 것을 무수히 보여줬고 보이고 있다.

시인 조지훈(1920~1968)은 그런 착한 사람들을 위해 살다간 대표적 선비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록파' 조지훈을 생각할 때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 로 시작하는 그의 시 '승무' 를 먼저 떠올린다.

나도 물론 그렇지만 거기에 덧붙여 나는 그의 수필 '주도유단(酒道有段)' 도 늘 함께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술을 마시는 데도 술을 대하는 수행의 정도에 따라 바둑처럼 급수와 단수를 매길 수 있다는 유머러스한 글이다.

이 글을 보면 바둑으로 치면 한 4, 5급 되는 단계가 상주(商酒)로 술 맛을 알고 즐길 줄도 아나 무슨 잇속이 있을 때나 마시는 사람을 가리킨다.

마키아벨리적 인간이다. 주야장창 술에 젖어 사는 3단 이상은 반드시 피해야 할 일이로되 1급으로 쳐주는 학주(學酒.주졸), 곧 술의 진체를 알고 늘 배우는 자세를 견지하는 단계나 기주(嗜酒.주객), 곧 자신은 몸의 상태나 해야 할 일 때문에 비록 술을 먹기에 곤란한 형편이나 남이 한 잔 하자 할 때 이를 뿌리치지 않는 단계 쯤은 좋은 관습으로 지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과장하자면 술에 있어서 이순신적 태도라고 할 만한 단계다.

우리가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라고 말할 때 그것이 진정한 가치를 가지려면 일상 속에서 그 존경하는 사람의 말과 행동을 기리고 따라야 한다.

존경은 관념이 아니고 실천인 것이다. 기성세대든 지금의 어린이든 자신이 존경한다는 인물의 됨됨이의 근처에라도 가보려고 노력한다면 세상은 완전히 바뀔 것이다.

출판인 조상호(51.나남출판사 대표)씨는 시인이자 국학자인 조지훈을 존경한다.

그는 외아들의 이름을 지훈이라고 지었고 20여년 전 절판된『조지훈 전집』을 96년에 간행했다. 출판사 사옥도 '지훈빌딩' 이라 이름지었다. 또 숙원이었던 '지훈상' 을 사재를 털어 제정했다.

지방의 고등학교 재학 시절인 60년대 후반 문학 강연차 내려온 검은 두루마기 차림의 지훈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고 "지사에 대한 충격" 을 받은 후 "지훈이 봉직하는 대학이라는 이유로 고대에 들어갔다" 했으니 그로서는 30여년간 지훈에 대한 존경을 나름대로 일상에서 실천해온 셈이다.

출판계에서 조씨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우리 사회 어느 분야나 워낙 말 많고 탈 많으니 그에 대한 평가도 그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오해나 편견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 라는 속담의 일리를 감안한다면 그 '평가' 와 강직한 스승의 한 표상인 지훈의 이미지와의 간극은 그 스스로 메워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지훈처럼 지금까지 살아왔는가' 라는 물음에 "앞으로 지훈처럼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봐달라" 고 했다.

남의 말에 희비하기보다는 자신의 삶의 지향점을 지훈 정도의 격으로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쉼없이 자신을 끌고 나가면 그 가능성이 반드시 자신의 것이 될 것이라고 했다.

어쨌든 한 인물에 대한 흠모의 정을 자신의 삶 곳곳에 끼워넣고 이를 기리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조씨의 지훈 존경은 앞서 소개한 아들 이름 말고도 많은 증거(?)를 갖고 있었다.

76년 복학(그는 71년 위수령 사태로 제적된 후 강제입대됐다) 후 일지사에서 나온『조지훈 전집』(전6권)을 1만4천원에 산 뒤(당시 등록금은 6만원 정도였다) 책 앞장에 '라이온스 장학금의 힘을 입어 지훈의 품에 안기다' 라고 감흥을 적어 놓았다.

'책만 사놓고 읽지는 않으면서 지훈 지훈 한 것 아니냐. 어디 밑줄 쳐가며 정독했는지 좀 보자' 라는 추궁(?)에 일지사 판 지훈전집을 꺼내 보여줬다.

전집 중 논설편을 보니 과연 여기저기, 예컨대 "이 길이든 저 길이든 우리가 찾는 길은 우리의 역사적 현실에 가장 적합한 길이어야 한다" "그러나 예나 이제나 몰락의 길은 평이하고 향상의 길은 간고하다" "어느 길을 찾을까 하고 고민하는 사람은 그 고민이 무엇 때문인가부터 자각해야 한다" 등의 글 옆에(그때는 세로쓰기가 일반적이었다)줄이 그어져 있었다.

그는 또 출판인으로서 늘 새겨두고 있다는 지훈의 시 '인쇄공장' 을 큰 소리로 낭독했다.

"모래밭을 스며드는 잔물결같이/잉크 롤라는 푸른 바다의 꿈을 물고 사르르 밀려갔다/물색인양 뛰어박힌 은빛 활자에 바야흐로 해양의 전설이 옮아간다. 흰 종이에도 푸른 하늘이 밴다. 바다가 젖어든다. 파열할 듯 나의 심장에 진홍빛 잉크, 문득 고개 들면 유리창 너머 난만히 뿌려진 청춘, 복사꽃 한 그루. "

마치 자신을 위해 지훈이 이 시를 지은 것 같다는 그는 정신적 스승의 존재 가치란 늘 그를 존경하는 사람의 현재를 그 스승이 감시하고 격려하는 데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내가 처한 이 입장을 스승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내 행동이 스승의 기준에 비춰 부끄러운 짓이 아닌가" 하는, 자신을 엄격하게 지탱시키고 때로는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그런 존재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 스승에 대한 모심은 집단적 종교와는 또다른 개인의 종교가 된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조씨는 79년 출판사를 차린 이래 지금까지 사회과학서와 문학서를 중심으로 2천종 가까운 책을 냈다.

특히 언론 관련 출판을 전문적으로 개척했고 지금은 독보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혹자의 평처럼 그가 지훈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 왔다면 그것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은 자연스럽다.

지나온 사연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남이 뭐라고 하든 옳다고 뜻한 바를 소신있게 밀고 왔다" 는 그의 말에 무게가 실리는 것은 그 책들 때문이다.

그의 사옥 지훈빌딩 앞에는 나이 든 소나무가 두 세그루 서있다. 지을 때 그 공간까지 활용해 음식점 같은 데 세를 줄 수 있었지만 풍류 비슷한 마음에 포기했다고 한다. 그는 사무실 안에도 작은 대나무 밭을 가꾸고 있다. 그가 지훈의 뜻을 되새기며 걸어가기를 기대한다.

이헌익 스포츠.문화 에디터

<지훈상은…>

'지훈상' 은 나남출판사 조상호 대표의 지훈 섬김의 결정체다. 지훈을 우리가 되찾아야 할 선비정신의 표상이라고 믿는 그는 '조지훈 전집' 을 간행할 때부터 '지훈상' 을 만들기 위해 현재 서울 미아동에 살고 있는 조지훈의 아내를 계속 찾았다.

문학(시집.평론).국학 두 부문에서 오는 5월 첫 수상자를 배출하는 '지훈상' 의 운영위원회는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 조동걸 전 국민대 교수, 성찬경 시인, 신용하 서울대.홍기삼 동국대.김인환 고려대.이성원 서울대 교수 등이 참여하고 있다. 상금은 각 5백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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