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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늦은 깨달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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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모 그룹 계열의 제조업체 관리부서에서 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1년 전부터 역시 네트워크가 중요하다는 생각에 열심히 이런저런 모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상무로 승진하고 다른 계열사로 옮긴 동기를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에게 최근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관리를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더니, 이렇게 말을 하더군요. ‘난 신입사원 때부터 그걸 알았는데, 넌 이제 그걸 알았냐?’ 정말, 좌절감 느껴졌습니다. 그 친구, 부장까지는 저보다 뒤쳐졌던 친굽니다. 저처럼 SKY 출신도 아니고요. 만년 부장 신세가 되어버린 나에게 일부러 들으라고 한 소리 같기도 하고. 그런데 더 충격적인 일은 그 친구와 만나고 돌아온 날, 회사로부터 명예퇴직 대상이라는 통보를 받은 겁니다. 정말 당황스럽고 화가 납니다. 명예퇴직 대상이라니요? 좀 더 일찍부터 네트워크 관리를 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후회도 들고, 다른 한편에서는 어차피 이렇게 된 바에야 그런 것 따위가 뭐 그렇게 중요하냐는 생각도 듭니다. 네트워크, 그렇게 중요한 겁니까?

A : 정말 답답하시겠습니다. 어떤 말로 위로를 해도 위로가 되지 않을 테니, 입에 발린 위로의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 대신 질문에 대답부터 드린다면, 네트워크? 아주 중요합니다.

당신의 사연을 읽다 보니 당신이 어떤 사람이었을 지 대강 그려집니다. 명문대 출신에 야심만만했을 당신은 아마도 ‘실력’이면 ‘상황 끝’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을 했고, 회사 내에서 정말 유능한 직원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나름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겠죠. 그 초년 공적의 여파로, 부장까지 쭈~욱 뻗어온 것이 아닐까 예상을 해봅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런 과정 속에서 보이지 않는 적들이 많이 생겼을 겁니다. SKY 출신도 아니고 실력도 부족하지만, 당신의 성공에 재는 뿌릴 수 있는 사람들 말입니다. 잘 나가는 당신의 눈에는 그들이 잘 보이지 않았을 겁니다. 아니, 보여도 무시했겠죠.

그런데 덜컥 부장에서 발이 묶이고 말았고, 회사 밖으로 내몰리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만 상황? 그것이 바로 당신이 지금 처한 상황입니다. 그런 당신에게 네트워크가 당장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소용이 있습니다. 회사를 떠나야 하기 때문에, 실은 더 중요해졌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겠죠.

대기업에서 잘 나간다는 사람들을 보면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속으로야 나름 고충이 없지 않겠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자신감에 차 있는 듯하고, 약간은 오만해 보이는 듯하고, 은근히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는 듯하고, 은근히 대접해주기를 원하는 듯도 한, 그런 분위기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난 언제나 ‘나도 예전에 저런 모습이었겠지?’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랬습니다. 나도 어지간히 밥맛없이 굴었습니다. 세상에 별로 두려울 것도 없었고, 나보다 잘난 놈도 주변에 별로 눈에 띠지 않았으니까요. 쥐뿔도 없는 것이 무슨 깡으로 그랬는지 모를 일입니다. 자~ 당신이 바로 그랬던 것 같습니다.

당신도 느꼈겠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네트워크가 소용이 있다는 말은 절대로 거짓말이 아닙니다. 왜 그러냐고요? 당신은 아마도 40대일 텐데, 앞으로 살아갈 날을 생각해 보십시오. 한두 해도 아니고 당신이 회사에서 보낸 세월의 몇 배를 더 보내야 하고, 또 돈을 벌어야 합니다.

회사라는 울타리도 사라진 마당에 당신에게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는 돌파구는 그나마 네트워크에서 찾아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런 면에서 네트워크는 이제 당신이 거의 전적으로 의존해야 할 재기의 수단일 지도 모릅니다.

때 늦은 깨우침! 절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동기에게 당한 굴욕도 잊지 마십시오. 그나마 공을 들였던 네트워크를 모두 접고 잠수를 타지 마시고, 더 열심히 관리를 하십시오. 길은 그래도 사람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TIP]

첫째. 신입사원 때부터 네트워크에 관심을 가져라!
둘째, 지금이라도 네트워크 관리를 시작하라!
셋째, 사람에게서 길을 찾아라!

이종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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