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등록금, 그 불편한 진실] 투명 회계의 결실 ‘오병이어 등록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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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경 기획처장은 “등록금 갈등은 상호 불신에서 나오기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가 신뢰할 수 있는 회계 투명성을 제1원칙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한동대는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오병이어(五餠二魚) 등록금’을 만들어 냈다. 학교 측이 등록금을 동결하면 학생들이 개인 사정에 따라 5만원, 10만원, 30만원, 50만원씩을 더 내는 자발적인 등록금이다. 오병이어란 성경에서 예수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고도 남았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된 말.

대학 측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등록금을 동결했지만 다른 대학들과 달리 재정 걱정을 하지 않는다. 2003년에도 오병이어 등록금으로 3%가량을 더 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학교 측이 학생들의 사정을 감안해 등록금을 동결하자 여유 있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5만~50만원씩을 더 냈다. 나중에 결산해 보니 이런 취지에 동감하고 등록금을 더 낸 학생이 무려 40%나 됐다. 이렇게 하면 가난한 학생은 등록금을 덜 내고 부유한 학생은 더 내는 효과까지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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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처장 등 학교 측 대표 5명과 심규진 총학생회장 등 학생 대표 6명은 지난달 초부터 네 차례 만나 등록금 문제를 협의했다. 대학 측이 회계장부를 총학생회 측에 전부 넘기는 것은 기본이다. 개인적인 월급항목 등 일부만을 빼고 다 보여준다. 총학생회 측은 회계사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점검한 뒤 지적사항을 전달하면 학교 측은 즉각 수용한다는 게 박 처장의 설명이다.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한다며 등록금 협의기구의 이름도 바꿨다. ‘한동대에서 함께 간다’는 뜻인 ‘한동행(行)’으로 정했다. 올해도 등록금 문제를 논의하기 전에 학교 측은 연간 550여억원에 이르는 예산편성표를 총학생회 측에 공개했다. 박 처장이 등록금을 올리지 않으면 학교 재정이 어렵다는 취지의 설명을 했다.

한동대는 학교와 학생 간 등록금 문제를 신뢰로 극복했다. 김영길 총장(앞줄 오른쪽)이 심규진 총학생회장과 얘기를 하다 어깨에 손을 올리며 파안대소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대학이 등록금을 받아 손익분기점이 되는 학생 수가 약 5000명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3500명입니다. 올해 등록금을 인상하지 않고 학기당 평균 350여만원씩 받아 예산을 짜면 적자가 뻔합니다. 우리는 재정의 70%를 등록금으로 충당합니다.”

심 총학생회장도 힘든 입장을 털어놨다. “재학생 1200여 명에게 인터넷을 통해 여론조사를 한 결과 64%가 동결을 원했습니다. 지방대학 특성상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도 하기 힘들기 때문에 더 어렵습니다.”

양측은 논리를 교환하면서 점차 견해차를 좁혔다. 마침내 학교 측은 학생들의 의견에 따라 등록금을 동결하기로 했다. 효율적으로 돈을 쓰기 위해 학생들의 의견을 참작해 예산 일부를 수정하기도 했다. 각 부문에서 허리띠를 졸라매기로 하고, 남는 돈으로 학생들이 요구하는 도서 구입비와 고시생 지원, 벤치 설치 등에 투입하기로 했다. 학교 측의 노력에 총학생회 측도 ‘오병이어 등록금’으로 화답했다.

탐사기획팀=김시래·진세근·이승녕·김준술·고성표·권근영 기자
이정화 정보검색사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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