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교육비리 척결” 무색하게 한 자율고 입시비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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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교육계는 과연 비리의 온상인가. 장학사 인사 비리, 학교 시설공사 비리, 방과후 업체 선정 비리가 이어지면서 이명박 대통령까지 나서 교육비리 척결을 강조한 마당에 이번엔 고교 입시 비리까지 불거졌다. 충격이 크고, 대통령에게 보다 강력한 수술을 주문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 지역 자율형사립고(자율고) 입시의 사회적배려대상자 전형이 비리의 진원지(震源地)다.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 등 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전형에서 중산층 자녀 등 부적격 학생이 다수 합격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부정 입학 사태는 자율고들이 주도한 측면이 강하다. 사회적배려대상자 전형에서 미달이 발생하자 중학교와 학생·학부모를 상대로 유치활동을 벌여 부적격자를 추가 모집했다는 것이다. 자격 요건이 안 돼도 학교장 추천서만 있으면 된다고 꼬드겼다고 한다. 특히 외국어고·과학고 낙방자를 보내 달라고 ‘입시 마케팅’까지 펼쳤다니 기막힐 노릇이다. 중학교 교장들도 뻔히 알면서 무자격자에게 추천서를 써줬다고 한다. 서로 짝짜꿍하며 비리에 발을 담근 셈이다.

자율고 입시비리는 교육 당국의 책임도 크다. 모집정원의 20% 이상을 사회적배려대상자로 채우도록 한 것부터가 문제다. 서울지역 중3 학생 가운데 기초생활수급자를 포함한 차상위 계층에 속하는 학생이 10% 남짓인 점을 감안하면 과도한 비율이다. 그러니 학교마다 미달이 속출한 것이 아닌가. 자율고를 귀족학교라고 비판하는 여론을 무마하려는 의도였겠지만 무원칙적인 접근이 이런 결과를 빚게 됐다. 학교장 추천의 모호한 자격 기준과 검증이 어렵다는 점도 비리를 낳게 하는 요소다.

자율고 입시비리가 재발해선 안 된다. 그랬다간 학교 다양화와 수월성 교육 강화라는 자율고 도입 취지는 빛 바래고 만다. 사회적배려대상자 전형 미달 인원을 일반전형으로 돌려 비리의 싹부터 잘라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배려대상자 모집비율을 현실에 맞게 낮추는 게 옳다. 중학교에 추천위원회를 구성해 명확한 기준에 따라 학교장 추천 학생을 선정하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입시에서 신뢰를 잃으면 학교 존립 자체가 위태롭다는 점을 유념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