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황정음 스타일을 건져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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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글=이진주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동대문에서 길을 잃다

128호, 129호, 130호…. 제일평화시장(‘제평’) 2층만 벌써 세 바퀴째다. 고만고만한 매장들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자니 어지럽다. 18일 오후 11시에 들어와서 자정이 넘도록 헤매고 있다. 주워들은 건 있어서 ‘도매뿐 아니라 소매로도 파는’ 제평엔 제대로 찾아왔다. 문제는 어느 가게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 정말 이렇게 헤맬 줄은 몰랐다. 동대문에 도착한 건 오후 6시였다. 그러나 개점 시간(평일 오전 10시~오후 5시, 오후 9시~ 다음 날 오전 4시30분)이 아니었다. 지하도 건너 두타와 밀리오레를 구경했다. 그리고 재도전. 그런데도 이 지경이다. 오전 1시를 넘어서니 정신이 몽롱해졌다. 나서기 전 익혀뒀던 ‘황정음 스타일’이 어떤 건지조차 헷갈리기 시작했다. 감각은 동대문에서 길을 잃었다.

눈에 밟히는 옷 많아 돌고 또 돌고

‘러플이나 레이스가 달린 색깔 고운 원피스 위에 가죽 라이더 재킷이나 데님 재킷 걸쳐 입기’.

‘워싱이 잘 빠진 스키니진이나 색색의 레깅스에 줄무늬나 귀여운 프린트 셔츠를 받쳐 입기’.

미리 작정하고 간 황정음 스타일은 이렇게 두 가지였다. 쉽게 찾을 줄 알았다. 이미 며칠 전 명동 눈스퀘어와 롯데 영플라자 패스트패션 매장에서 20~30분 사이에 모든 미션을 해결하고 자신감을 얻은 상태였다. 그런데 동대문에선 답이 없었다. 아무리 돌아도 눈에 띄는 옷이 없었다.

지나던 아주머니가 “여기(2층)는 정장을 파니 위(3층) 캐주얼매장에서 찾으라”고 했다. 으악! 정장 파는 데에서 황정음 스타일을 찾았으니…. 오전 1시 5분 서둘러 올라간 3층은 입구 매장부터 흐뭇했다. 돌고 돌았다. 몇 번을 돌았는지 셀 수조차 없다. 옷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힘들었다. 저쪽에서 봤던 스트라이프 니트 원피스도 산뜻했고, 막 지나온 분홍색 시폰 원피스도 눈에 아른거렸다. 그나마 티셔츠와 바지는 점 찍어뒀던 가게가 어디였는지 자꾸 잊어버렸다. 결국 단품으로 매치하는 건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패스트패션 브랜드에서 황정음 스타일을 쏙쏙 뽑아낸 것은 애초 내 감각이 아니었다. ‘그들’의 발빠른 트렌드 반영 솜씨와 상품을 정리해 진열하는 세팅 능력 덕분이었던 것이다.

올레! 고르는 재미, 깎는 재미

이젠 타협해야 한다. 허벅지 위쪽을 살짝 덮는 ‘베이지 리틀 드레스’로 낙점했다. 완벽한 황정음 스타일이었다. 게다가 카피도 아니란다. 오전 1시50분. 부르는 가격은 5만8000원. 그래도 좀 깎아 보기로 했다. 흥정의 결과는 5만2000원. 올레! 매치할 가죽 라이더 재킷을 찾으니 철이 바뀌어 다 나갔다고 했다. 이월상품 중에서 토끼털 볼레로를 찾아냈다. 2만5000원.

남은 건 가방. 손에 딱 잡히는 클러치가 필요했다. 이왕이면 배색이 맞는 검은색 실크 소재가 좋겠다 싶었다. 다시 돌기 시작했다. 명품 카피 디자인에 지칠 무렵 어느 가게의 한쪽 코너가 눈에 들어왔다. 검은색 새틴 백이었다. 홍콩에서 사왔단다. 명품은 아니지만 오리지널 디자인에 소매가 5만8000원. “워낙 저렴해 도매가로는 팔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올레!

그럼 구두는? 가방을 산 집에서 물으니 오리지널 디자인 구두는 ‘누존’에 가야 한단다. 제평 맞은편에 있다고 했다. 가깝다고 했지만 처음부터 다시 ‘빌딩을 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 오늘은 처음이니까….’ 구두가 예쁜 상가를 알아낸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택시에 올랐다. 미터기 위 시계가 빨간색으로 깜빡이고 있다. 오전 2시20분.

초짜가 알아낸 동대문서 헤매지 않는 법

● 원하는 스타일을 정해 과소비와 시간낭비를 막는다.

● 처음 한 바퀴는 훑어보며 눈에 띄는 가게 명함을 받는다.

● 다음에는 상품을 자세히 살펴보며 명함을 버려 나간다.

● 흥정할 때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한다고 말하면 도매가로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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