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림·비주얼한 문고 시리즈 눈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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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시집 판형보다 약간 슬림한 크기와 두께에 시원스럽게 들어앉힌 원색 사진 도판.

지난해 7월 첫권이 나왔을 때 신선한 느낌을 안겨줬던 한국형 문고본 시리즈 「창해ABC북스」(각권 9천원)가 30권을 기록했다.

『미식(美食)』 『조르주 상드』 『레바논』이 27~30권째이다.

앞으로 2년여에 걸쳐 1백여권이 나올 이 시리즈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두가지다.

그것은 ▶다양한 판형의 개발이라는 국내 출판물의 과제

▶영상시대에 걸맞은 '비주얼화된 입체편집' 의 모델 제시 측면을 각각 말한다.

우선 다양한 판형의 개발은 한국 출판시장 특유의 '거대주의' 의 벽을 허무는 작업이다.

책 내용에 따라서는 손안에 쥐어지는 양감(量感)의 문고본이 활성화할 수도 있건만, '집은 작아도 대문은 커야한다' 는 심리가 '큰 책 선호' 를 지속시키고 있다.

문고본 개발은 70년대 한때 유행했던 문고본의 부활이고, 길게 보자면 조선시대 선배들이 소매 안에 넣고 다녔던 수진본(袖珍本)의 현대적 변용이다.

엄격히 말해 「창해ABC북스」는 70년대 문고본보다는 다소 크다.

단, 이 시리즈가 1백여권이 나와 이미 자리잡은 시공사 '디스커버리 총서' (1백권 내외)와 늠름한 투톱을 형성한다면 변화를 기대함직하다.

여기에 지난 89년 이후 1백여권을 장식했던 대원사 「빛깔있는 책」시리즈도 한 몫을 거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창해ABC북스」에 대한 기대는 영상시대에 발맞춘 책의 변신 가능성 때문이다. 매 페이지가 큼지막한 원색사진으로 장식돼 있어 독자들은 지루하지 않다. 백과사전식 정보를 다이제스트로 집어 넣었기 때문에 실용성도 있다.

본래 프랑스의 「클레르 드 마리옹 ABC북스」시리즈를 옮겼기 때문에 원색분해의 효과도 수준급이다.

각권이 『프랑스영화』 『맥주』 『축구』같은 실용적 테마들로 채워진 것도 변화하는 시대 독자들의 요구와 맞아 떨어진다. 남은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도 큰 문제다. 왜 독자적인 개발 대신 품이 덜드는 단순 번역물인가 하는 대목이다.

'에디터십은 뒀다 뭐에 쓰려고' 하고 묻고 싶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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