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SS해운의 30년 경영 역사 '손해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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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KSS해운 박종규 회장의 『손해를 보더라도 원칙을 지킨다』는 단순한 책,그 이상이다.

외양상으로는 한 중소기업 경영 30년을 기록한 범상한 사사(社史)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현대 상업사의 기업윤리, 기업문화 정립과 관련해 어떤 가능성까지 발견할 수 있다. ‘기초를 다지자’는 2001년 중앙일보의 제언을 염두에 두고 ‘행복한 책읽기’팀 두명의 기자가 이 책을 함께 읽었다.

고희를 바라보는 박종규(67)회장의 집무실은 KSS해운이 입주한 서울 관훈동 관훈빌딩 9층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요즘 자신이 창립을 주도한 '바른경제 동인회' (회장 한승헌 변호사)의 사무실(관훈빌딩11층)에서 상근한다.

1995년 이후 석유화학원료 운반을 전문으로 하는 특수선(特殊船)업체인 KSS해운의 경영을 자기 핏줄이 아닌 전문경영인에게 맡긴 뒤 '바른 경제' 의 확산을 위해 사회활동에 나선 것이다.

『손해를 보더라도…』의 저자 박회장을 주목하는 이유는 '기업문화의 기초' 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원칙경영을 업계의 따돌림까지 감수하고 30년 동안이나 지켜왔다는 점, 그리고 그것을 한 중소기업 안에 시스템화했다는 측면 때문이다.

그가 시궁창 기업문화에 정면으로 맞서 지켜온 다섯가지 원칙은 사내 인맥, 리베이트(뒷거래), 밀수, 회계장부조작 등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그런 원칙을 고수한 채 기업활동이 가능했다는 자체가 놀라운데, 이를테면 그는 운임을 더 깎아주면 주었지 뒷거래는 하지 않았다.

이런 일들로 화물주(貨物主)나 관련 기관 등의 미움을 살 것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른바 왕따를 각오하고 밀어붙인 그의 원칙은 궁극적으로 돈만으로는 결코 살 수 없는 '신뢰' 를 가져다 줬다.

1997년 외환 위기 속에서 3년간 내리 흑자를 기록했다는 것도 원칙경영이 외려 더 생산성이 높을수 있음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경영자들을 가장 피말리는 일이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꺼리는 것이다. 대개 3년 연속 적자면 신규 대출은 물론 기존의 대출까지 회수하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적자 기업은 결국 결산서를 꾸며 법인세를 내고라도 이익이 있는 것처럼 발표한다.

반면 흑자가 나면 법인세를 많이 내야 하기 때문에 이익이 덜 난 것처럼 꾸민다. 이른바 '정책결산' 이고 '분식(粉飾)회계' 다. 박회장은 95년부터 회계조작이라는 편법의 사슬을 끊는다.

사내외에 형성된 신뢰가 밑거름이 된 자신감의 결과다. 그는 평생의 소신인 종업원 지주제(현재 지분 15%)의 확립을 위해 자신의 주식 지분 30%도 언제든 내줄 태세다.

'바른경제 동인회' 내부에서조차도 이견이 있는 민감한 부분이 경영권 세습의 문제다. 이에 대해서도 박회장은 단호하다.

"자식에게는 독립심을 키워주는 교육만으로 족하다" 는 것이다.

박회장이 존경하는 사람은 선배 기업인인 유한양행의 창립자 고 유일한(柳一韓)박사다.

"기업은 개인의 사유물이 아니라 사회의 공기(公器)다. 재산은 상속할 수 있지만 경영권은 상속해선 안된다."

맹자(孟子)가 자본주의 서울에 다시 태어난다면 했을 법한 이 말은 유일한 박사의 경영철학이며, 대학시절부터 유박사를 존경해오던 박회장이 원칙경영을 하게 된 정신적 배경이다.

이 책은 본래 KSS해운 30년 사사(社史)로 쓴 것이다.

그러나 기업경영의 명암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솔직함이 "한 기업의 역사를 넘어 한국 경제의 이면을 보여주는 훌륭한 경영학 교과서" 라는 출판사의 판단으로 단행본으로 일반에도 선보이게 되었다.

배영대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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