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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내연의 처 성혜림의 언니 수기 펴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등나무집'(지식나라 ·1만2천원)의 저자 성혜랑(65)씨의 가족사는 꽤 길고 복잡하다.

북한의 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내연의 처 성혜림의 언니이자, 성혜림이 낳은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을 키운 가정교사며, 1997년 분당에서 머리에 총탄이 박힌 채 의문사한 이한영의 친어머니 등등. 뭉뚱그려 간단히 특징짓자면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살아온 여인'쯤 될 것이다.

'등나무집'은 그가 살아온 신산한 곡절을 매우 담담하게 일기체로 풀어쓴 책이다.구체적 사실이 지닌 진솔성은 과장하지 않은 담담한 서술 속에서 오히려 더 강렬하다.5백쪽 분량의 책에서 내내 눈을 떼기 힘들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책은 4편으로 나눠져 있다.1편은 성혜랑씨의 어머니가 쓴 수기. 2 ·3 ·4편은 성혜랑씨가 직접 썼다.

2편은 서울서 자란 어린 시절부터 전쟁후 월북하기까지, 3편은 월북후 김정일 아들의 가정교사가 되기까지,4편은 가정교사 생활에서 망명하기까지의 얘기다.

성혜랑씨 부모는 해방전후사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양반가문 출신 좌익 인텔리'다. 아버지는 경남 창녕의 명문가 출신 지식인이며,어머니는 20년대 민족주의 잡지 '개벽'의 여기자 출신이다.

해방 이후 좌익에 가담한 이들은 아버지의 경우 전답을 모두 소작농에게 나눠주고, 전쟁전 북한의 김일성을 면담하고 돌아오는 길에 붙잡혀 옥살이를 한다. 어머니는 박헌영 등 남로당 간부들을 숨겨주고 먹여주다가 마침내는 자식을 할머니의 손에 맡기고 단신 월북한다.중학생이던 오빠 역시 좌익사상으로 무장한 채 어머니를 찾아 월북한다.

이통에 고아 아닌 고아 처지의 저자가 맞이한 6 ·25는 곧 '기쁨과 설레임'이었다고 고백된다. 월북후 북한사회에서의 생활, 특히 남로당 출신에 대한 숙청과정에서 겪은 가족의 수난에 대한 서술은 더욱 생생하다.

52년 박헌영 등이 숙청되는 과정에서 저자의 어머니가 인민재판을 받는 장면은 익히 들어온 얘기들이지만 설득력있게 묘사된다. 전전 끝에 결국에는 소죽을 쑤는 노무자가 되버린 아버지의 전락은 남로당 출신 인텔리의 허망한 끝을 일러준다.

책의 하이라이트는 김정일과 직접 관련된 4편. 성혜랑이 묘사하는 김정일은 6 ·15정상회담에서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던 바로 그 모습의 김정일이다. 호방한듯 하면서도 섬세하고 신경질적인 2세 절대권력의 전형이다. 저자의 동생 성혜림은 미모의 배우 출신으로 권력자의 눈에 드는 바람에 이혼을 강요당하고 김정일의 아들을 낳는다.

그러나 그늘에 숨어지내야하는 내연의 관계속에서 히스테리에 시달린 동생의 궂은 일을 받아낸 사람이 저자다. 저자는 남과 북을 모두 버린 입장에서 호소를 한다. 좋은 세상이 와 남과 북을 함께 찾을 수 있는 날을 만들어달라고.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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