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보는 세상] 盜賊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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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도둑은 인류 문명의 역사와 함께했나 보다. 갑골문에도 남의 물건에 욕심을 내고 훔친다는 ‘도(盜)’자가 나오니 말이다. ‘盜’는 흐른다는 뜻의 ‘沇(유)’와 그릇을 뜻하는 ‘皿(명)’이 합쳐진 글자였다. 남의 그릇에 담긴 음식을 보고 침을 질질 흘리는 형상이다. 남의 물건을 몰래 쓰는 ‘도용(盜用)’, 남의 무덤을 파헤치는 ‘도굴(盜掘)’ 등에서 그 뜻이 온전히 살아 있다. 절도(竊盜)의 ‘절(竊)’은 구멍(穴)에서 곤충(蟲)이 쌀(米)을 먹는 모습이다. 쌀벌레가 쌀독에서 쌀 파먹듯, 몰래 남의 것을 빼앗는 게 바로 절취(竊取)다.

먹을 게 줄어들고, 사회가 혼탁해지면서 도둑은 더 과감해졌다. 도적을 뜻하는 또 다른 한자인 ‘적(賊)’은 창(戈)으로 재물(貝)을 빼앗으려는 자들을 일컬었다. 이런 자들이 산에 있으면 산적(山賊)이요, 바다에 있으면 해적(海賊), 말을 타고 이동하면 마적(馬賊)이었다. 재물을 노리고 부모를 해하는 자를 적자(賊子)라 했으니, 최악의 패륜아였다.

이미 집에 들어온 도둑은 ‘구(寇)’가 된다. 집(家)에서 사람(元)이 무기를 들고 행패를 부리는 형상이다. 조선시대 남해안 주민을 괴롭혔던 왜구(倭寇)가 그들이다. 이 밖에도 노략질을 뜻하는 ‘략(掠)’, 물건을 훔친다는 의미의 ‘투(偸)’, 빼앗는다는 뜻의 ‘탈(奪)’ 등 도둑을 뜻하는 한자는 많다. 도둑질 형태가 얼마나 다양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양상군사(梁上君子)’라는 성어도 있다. 중국 후한(後漢)말 현감 벼슬을 지낸 진식(陳寔)이라는 사람이 자기 집 대들보에 웅크리고 있는 도둑에게 들으라고 한 말이다. 그는 “나쁜 짓을 하는 사람도 좋지 못한 습성이 붙었을 뿐 본바탕이 악한 것은 아니다”라며 “대들보(梁上) 위의 저 군자도 그런 사람일 것”이라고 두둔했다고 한다. 후한서(後漢書)는 ‘도둑이 진식의 말을 듣고 대들보에서 내려와 감읍했다’고 전한다.

최근 국내 정치권에서 때 아닌 ‘강도(强盜)’ 논쟁이 벌어졌다. 정파로 나뉘어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며 몽둥이를 들 태세다. 그들에게서 자기 집에 들어온 도둑조차 ‘군자’라 불렀던 진식의 사려 깊음은 찾아 볼 수 없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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