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온양6동 새마을회 캄보디아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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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캄보디아 쁘라사 마을을 찾은 온양6동 새마을회 회원들이 현지 주민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회원들은 보람된 시간이었지만 그곳을 떠올리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고 했다. [온양6동 새마을회 제공]

박철우(50·농업)씨는 보름 전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곳을 다녀오고부터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천국’이란 생각이 들었다. 밥 먹듯 굶고, 흙탕물로 목을 축이던 주민들의 모습이 눈에 밟힌다. 잠자리에 대한 불평은 사치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전기는 끊기고 물도 귀해

아산시 온양6동 새마을회 회원 8명은 지난달 28일부터 3박5일간 캄보디아를 다녀왔다. 동 단위 단체가 외국 봉사활동에 나선 것이다. 전국에서도 드문 일이다. 행정동 온양6동엔 풍기동·법곡동·읍내동·장존동이 속해있다.

대상지는 프라이벵도(道) 쁘라사군(郡). 도착 첫날, 이들은 한숨만 내쉬어야 했다. 물과 음식, 잠자리 등 무엇 하나 제대로 갖춰진 것이 없었다. 펌프 등 기존에 지원받은 시설은 방치돼 있고, 전기시설 역시 있으나마나였다. 자동차 배터리로 간혹 늦은 밤 불을 밝힐 뿐이었다.

박씨는 “전기시설은 돼 있지만 요금이 비싸 주민들이 쓸 엄두도 못내고 있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가정엔 부엌도 없었다. 건기가 오래 계속돼 “실컷 먹은 건 먼지 밖에 없다”고 했다. 농사를 지어도 벼이삭이 다 타들어가 식량이 턱없이 모자랐다.

캄보디아는 원래 3모작까지 가능하지만 건기가 지속되고 농업용수 공급시설조차 없어 1모작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은 “우물만 있으면 식수와 기본 위생용수로 사용하고, 2모작까지는 가능할 것”이라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그나마 이곳은 사정이 나은 편. 마을 군수 안내로 2시간 남짓 차를 타고 도착한 마을은 더욱 심각했다. 김정연(50·여·가정주부)씨는 “주민 전체가 하나같이 바싹 말랐다”며 “연료조차 없어 음식을 제대로 해 먹지도 못한다”고 했다. 김명희(51·여·미용실운영)씨는 “흙탕물이라 빨래를 해도 빛이 안 나고, 잘 씻지 않아 피부상태도 심각하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래도 아이들이 새 옷을 보면서 활짝 웃거나 로션을 바르며 행복해하는 모습이 그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줬다.

명희씨는 “로션을 발라주니 신기해했다”며 “아이들이 손가락으로 찍어보고 서로 눈치를 살피다 줄 서서 바르려 했다”고 말했다.

정연씨는 “아이들에게 입힐 새 옷을 한껏 가져간다고 가져갔는데도 모자랐다”고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미용에 목욕봉사까지

새마을회 회원들이 쁘라사 마을 아이들의 머리를 깎아주고 있다.

이들은 둘째 날부터 이미용·목욕봉사활동을 벌였다. 양치하는 법도 가르쳐 주고 수건·치약·칫솔·비누세트를 건네주면서 위생교육도 했다. 마을 주민, 어린 아이들에게 깨끗한 옷을 입히고, 학생들에게는 학용품을 전달했다. 또 우물 8곳을 새로 설치하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이만형(44·식당운영)씨는 “주민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머리를 감지 못했던지, 이발기(속칭 바리깡)가 머리에 들어가지도 않았다”며 “물 사정이 좋지 않아 깎고나서 머리 감는 데도 애를 먹었다”고 했다.

안타까운 만큼 정겨운 추억도 만들어왔다. 지역주민, 어린 아이들과 ‘아리랑’ ‘고향의 봄’을 부르며, ‘강강수월래’도 알려줬다. 레크리에이션 프로그램은 미처 준비를 안해 가 즉석에서 아이디어를 냈다. 그래도 아이들은 호기심을 보이며 마냥 즐거워했다. 재미에 취한 아이들이 밤늦게까지 집에 가지 않아 제때 잠을 못이루기도 했다.

이 대통령 “새마을운동 해외로”

캄보디아 ‘원정 봉사’는 우연한 기회에 이뤄졌다. 1년쯤 전 온양6동 새마을회 대표를 맡고 있는 최동석(46)씨가 전국 새마을지도자회 모임에 갔던 것이 계기가 됐다. 이 자리에서 “새마을 운동을 세계에 전파하고 다른 나라를 도와줘야 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연설을 들은 것. 최씨는 우리도 해외 봉사에 나서보자고 제안했다. 한 회원이 여행 가본 캄보디아를 꼽았다. 이때부터 새마을회가 직접 자금마련을 위한 수익사업을 시작했다.

우선 매년 2차례 다니는 선진지 견학을 생략하고 월례회나 주요 행사의 식비를 아꼈다. 도로변 꽃길 가꾸기, 여름철 위생방역 등 사업도 벌였다. 휴경지에 재배한 고구마와 배추를 팔기도 했다. 좋은 일을 한다고 하니 주위에서 후원도 들어왔다. 그래도 모자라 봉사활동을 가는 이들이 사비를 털었다.

최 회장은 “한 단체가 아니라 지역과 주민, 국가 발전을 위한 사업”이라며 “우리의 지구촌 봉사가 모범사례가 돼 전국적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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