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기업정보 훔치기 사설도청 날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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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 11일 오후 벤처빌딩이 밀집해 있는 서울 테헤란로 강남역~삼성역 3㎞ 구간.

본사 취재팀이 활동을 시작한 지 세시간 만에 '도청전용 수신기' 에 괴(怪)전파 6~7개가 잡혔다. 주식 매입 수량.시기, 컴퓨터 운영시스템(OS) 입찰 계획, 기술특허 일정, 내년도 부동산 투자 계획…. '민감한' 대화들이 잡음 하나 없이 생중계하듯 들려왔다.

13일 오후 삼성동 무역센터 인근 골목. 취재팀은 이틀 연속 검색에 잡힌 30대 남자들의 대화를 역추적했다.

안테나 탐색으로 찾아낸 전파 발신지는 모 빌딩 5층에 입주한 한 벤처업체. 양해를 구하고 60평 규모의 사무실을 샅샅이 검색한 지 30여분. 연구개발실장 책상서랍 안쪽에 부착된 일본제 초소형 도청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같은 날 삼성동 포스코빌딩 옆 20여m 지점. "삐-뚜-" 하는 선명한 팩스 수신음향이 수신기에 걸렸다. 팩스 전용 추적기를 들이대자 주변 한 업체의 팩스번호가 찍혀 나왔다. 문서로 오가는 모든 정보를 누군가가 실시간으로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사설(私設)도청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특히 대기업 및 벤처기업, 금융기관, 민간연구소 등이 도청의 타깃이 되고 있어 주요 산업기밀이나 금융.기술정보 등의 유출이 우려된다.

본사 취재팀은 도청탐지 전문업체 다섯 곳과 함께 서울 테헤란로.여의도 전지역.홍릉 연구소 타운, 대전 대덕 벤처밸리 등 첨단 산업.금융업계 밀집지역에 대해 보름 동안 도청 검색작업을 벌였다.

그동안 30여개의 도청전파가 감지됐고, 5개의 도청기를 실제로 찾아냈다. 누가 도청기를 설치했는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도청탐지 업체 관계자는 "경쟁업체의 소행이거나 구조조정을 앞둔 업체에서 이직을 염두에 둔 내부자의 도청으로 추정된다" 고 말했다.

그는 "실제 도청검색 작업을 해보면 특히 구조조정 업체들의 경우 10곳 중 3~4곳에서 도청기가 발견된다" 고 말했다.

실제로 이달 초 위기설이 돌았던 제2금융권 A사 한 임원의 책상 밑에선 한달 정도 유지되는 배터리가 거의 소모된 일제 소형 도청기가 발견됐다.

최근 퇴출된 B사의 경우 주요 임원실마다 2~3개의 도청기가 나왔다. 취재과정에선 전문가들에게조차 생소한 첨단 도청장비도 발견됐다.

기획취재팀=이상복.서승욱.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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