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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세종시와 국민투표의 잘못된 만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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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국민주권주의의 실현 방식으로 우리 헌법은 대의제를 원칙으로 삼고 있다. 물론 예외적으로 대의제가 가진 문제점들을 수정 보완하기 위해 국민이 직접 국가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국민투표제도를 두고 있긴 하다. 하지만 이는 헌법 조문에 명시적으로 규정돼 있듯이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인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제도일 뿐이다.

과연 이미 국회에서 제정된 세종시 관련법이 국민투표라는 예외적인 방법으로 변경해야 할 만큼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인가? 대의제를 통해 결정된 세종시 문제를 다시 국민투표로 변경하겠다는 시도는 의회민주주의를 훼손할 가능성이 많고, 나아가 ‘입법권은 국회에 있다’는 헌법 규정의 의미를 반감시킬 것이다. 법률 제정에 대한 전속적 권한을 가지고 있는 입법부를 뒤로하고 국민투표라는 직접민주주의적 방식을 남용하면, 법률안 제출권과 법률안 거부권을 가진 대통령이 국민투표를 매개로 실질적으로 입법권까지 행사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 이건 헌법상 권력분립원칙과 어울리지 않는다. 헌법재판소도 ‘재신임 국민투표는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국민투표의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찬반투표적 성격이 강한 국민투표에서는 대의제에 비해 이성적 토론을 통한 설득과 타협의 기회가 봉쇄되기 쉽고, 국가의사가 선동과 순간적인 감정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많다. 유권자의 참여율이 낮은 경우 이를 전체 의사로 추정하는 것은 정당한가. 의회에서 다수 형성이 어렵다고 행해진 국민투표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의사와 국민투표에 참여한 국민의 의사 간의 불일치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만약 국민투표가 부결되는 경우 그 엄청난 정치적 혼란은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정치인들이 정상적인 대의제 절차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키기 어려우면 ‘국민의 뜻’ 뒤에 숨기 위해 국민투표를 이용한다. 그렇게 책임을 회피하면 그 책임은 누가 지는가. 국민이 지는가? 그건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정치가들은 어디에 가고, 책임정치는 어디에 있는가.

세종시 문제를 국민투표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원칙이 아니다. 원칙이 아닌 상황에서 헌법과 정치가 만나는 것은 법치의 훼손이고, 정치의 실종을 가져올 뿐이다. 원칙을 뛰어넘어, 법치를 훼손하고 정치를 실종시키면서까지 국민투표를 강행할 상황은 더더욱 아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정치는 정치의 길을 가고, 규범은 규범의 길을 갈 수 있도록, 국회가 앞장서는 것이 정답이다. 원안이든 수정안이든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헌법적 기본원칙들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인들은 절차를 지키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국민의 심판을 겸허하게 기다리면 된다.

조홍석 한국헌법학회 회장·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