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정쟁 난무의 까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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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호 35면

정부 각 부처에는 기자실이 있다. 그곳엔 정해진 기자들이 출입하며, 정부 정책을 국민에게 전달하고, 아울러 정부의 업무와 시책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기존 교육인적자원부와 과학기술부를 교육과학기술부로 통합했지만, 부처 통합 이후에도 교육 기자실과 과학 기자실은 여전히 별도로 운영되고 있다. 거기에는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가 있다. 교육 관련 기사와 과학기술 관련 기사는 관심의 대상과 기사 취급 방식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교육 분야의 이해관계자는 교육 당국을 필두로 사교육 시장, 학생, 학부모를 포함해 거의 전 국민이나 다름없다. 교육에는 이념성의 대립관계도 있다. 추구하는 목적·방향·수단에 따라 다양한 이해집단이 존재하며 이들은 항상 정부의 교육 정책과 교육계의 뉴스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교육 기자들은 대개 사회부 소속으로, 교육과 관련된 문제점을 지적하고 고발하는 등 사회성 있는 기사를 추구한다.

반면 과학기술 분야에는 이념성이나 정파적 이해관계가 거의 없다. 과학기술을 발전시키자는 주장에 반대할 사람이 별로 없으니,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할 쟁점도 선정성도 없다. 게다가 과학기술 기사는 전문성이 강해 일반인에겐 어렵고 접근이 쉽지 않다.
언론사에서는 드물게 과학전문기자를 확보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기자의 전공이나 배경이 꼭 과학기술 분야일 필요는 없겠지만, 기자들의 업무가 2~3년마다 순환되는 것을 감안하면 과학 기자로서 전문성을 갖추는 것은 전적으로 기자 개인의 역량과 노력에 달려 있다. 따라서 부족한 전문성은 기사를 제공하는 공급자에 의존하게 된다. 이런 풍토에서 깊이 있고 재미있는 과학 기사가 나오고 있다면 고마운 노릇이다.

언론사 상황이 어렵다 보니, 최근에는 과학 담당 기자가 다른 업무로 보직이 바뀌면 신임 과학 기자를 배정하지 않는 언론사도 생기고 있다. 부처가 통합되었지만 교육 기자실과 과학 기자실이 통합되면, 당장 국민적 관심이 크고 시의성 있는 교육 기사에 치중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우리의 미래를 담보하는 과학기술 기사는 점점 줄어드는 결과를 낳게 된다. 교육과학기술부의 과학기술 기자실이 별도로 유지되는 것은 과학기술계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이유다.

이런 상황은 세종시 논란에서도 나타난다. 현 정부가 제시한 세종시 신안은 거대한 기초과학진흥사업이다. 거기에 첨단지식 산업과 비즈니스가 연계된 창조적 미래 도시와 벨트 구축 사업이다. 그러나 막상 세종시 신안과 관련해 언론에 나오는 것은 누가 어떤 발언을 했느냐 하는 정치적인 기사뿐이다. 세종시 신안의 핵심인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과학적 내용은 철저하게 논의에서 소외되고 있다. 과연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아는 국민이 몇 명이나 될까?

중이온가속기의 입지 문제도 그렇다. 가속기 전문가들은 ‘사람 사는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이면, 가속기 입지로 문제없다’고 말한다. 사람 목숨이 가속기보다 더 소중한 것 아닌가? 지진을 안고 사는 일본 전역에는 크고 작은 가속기가 1200여 대 있고, 교육기관과 연구기관에만 200대의 가속기가 있다. 전 세계에 거의 2만 대의 가속기가 있지만 어느 국가에서도 가속기 입지 선정을 놓고 우리 정치인들처럼 지질 문제를 거론한 적이 없다. 가속기 입지 문제는 전문가들이 논의하고 과학 기자들이 분석해 보도해야 할 사안인데 언론에는 정치인들의 근거 없는 정치적 의견만 난무하고 있다.

선진국 진입은 사회 각 분야가 고르게 발전할 때에 가능하지만, 각 분야 중 든든하게 다른 분야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 과학이다. 분명히 국가의 미래는 과학기술에 달려 있다.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필요조건이 많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역량 있는 과학 기자를 확보하고 기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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