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을 이기는 기업들] 2. 기술력은 언제나 통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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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경쟁업체보다 앞선 기술력으로 만든 제품을 내놓는 기업들은 불황에도 흔들림이 없다.

우리나라에도 한가지 제품 생산에 수십년 동안 매달려 세계 어느 곳에 수출해도 손색없는 제품을 만드는 기업이 적지 않다.

개발 노하우가 쌓이면서 경쟁력 있는 제품 개발에 속도가 붙어 국내외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수원에 있는 씨앗 개발업체인 ㈜농우바이오의 고희선 회장은 종묘업계에서 '무서운 경영자' 로 통한다.

환란(換亂) 이듬해인 1998년 국내 대표적 종묘업체인 흥농종묘와 중앙종묘가 경영난을 견디지 못해 외국계 종묘회사에 팔렸는데 업계 중위권인 이 회사는 건재했다.

농우바이오는 80년 창업 이래 한국 지형에 맞는 씨앗 개발에만 매달렸고 해마다 매출액의 10% 안팎을 연구개발비로 쏟아부었다.

다들 어렵다며 한숨짓던 98년에도 이 회사의 매출액은 97년보다 20% 늘어난 1백98억원을 기록했다. 현재 국내 종묘시장의 20%를 차지하며 업계 2위로 부상했다.

이 회사가 개발한 김장고추 재배 씨앗인 '마니따 고? 는 국내 대부분의 고추농가에서 종묘로 쓰고 있다.

또 비닐하우스 수박 재배용 '금천 수박' 을 선보여 그동안 전량 수입해왔던 겨울철 재배용 수박 씨앗을 국산으로 대체했다.

高회장은 "일년에 1백일 이상 연구소에서 연구원들과 함께 지낸다" 며 "올해 2백만달러어치의 씨앗을 수출했는데 내년에는 타원형 형태의 수박을 만드는 '아폴로 수박' 씨앗을 중심으로 수출이 더욱 늘어날 것" 이라고 강조했다.

농우바이오는 경기도 여주 육종연구소 외에 밀양.제주 등지에도 육종재배소를 갖췄으며 미국.중국.인도네시아에도 연구법인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전자의료기기 업체인 세인전자는 세계 혈압계 제조업계의 신데렐라다.

이 회사가 개발한 신종 병원용 혈압계(상품명 SE-7700)는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이 제품은 그동안 병원에서 사용해오던 수은혈압계를 대체하는 기능을 갖췄다.

세인전자는 90년 창업한 뒤 혈압계 개발에만 몰두해 가정용 혈압계의 세계 시장 점유율 10%로 세계 2위로 올라섰다. 특히 유럽 시장의 40%는 세인전자의 몫이다.

세인전자가 최근 개발한 '미세 배기 제어기술' 은 일본 업체도 아직 개발하지 못한 것이다.

이 기술은 혈압을 재기 위한 완대를 차는 팔의 굵기, 혈압 박동수 등에 관계없이 한가지 표준 완대로 일정한 조건 아래 혈압을 잴 수 있도록 고안했다.

사양산업으로 여겨지는 제품도 개발 여부에 따라선 세계 시장을 호령할 수 있다. 경기도 안산의 석유난로 업체인 파세코는 올해 석유난로 하나로 4천5백만달러어치를 수출했다. 미국 석유난로의 80%는 파세코 제품이다.

이 회사는 98년 석유난로가 일정온도 이상 달아 오르거나 유해가스가 나오면 저절로 불이 꺼지는 자동소화 장치를 내장한 석유난로를 개발해 프랑스에서 특허를 따냈으며, 미국에 이어 유럽으로 수출시장을 넓히고 있다.

파세코는 이 '저절로 불이 꺼지는 장치' 를 한발 앞서 개발한 일본 제품보다 기능을 단순화한 데 이어 가격도 80%나 낮춘 1달러 대에 생산해 미국 석유난로시장을 석권하던 일본 제품을 몰아냈다.

번쩍이는 아이디어도 기업의 성패를 가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인덕대 김종부 교수는 벤처기업인 모비컴IT라는 회사와 함께 초고속 통신망 소재로 쓰이는 광섬유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출시한 지 두달도 안됐는데 연말을 앞두고 서울 여의도 대한생명 사옥 등 대형 건물주로부터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전구 대신 광섬유의 끝을 나뭇가지와 함께 묶어 빚을 내는 방식으로 불꽃놀이와 다양한 불꽃 조형물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연구개발 투자는 <그림>에서 보듯 외환위기 직후 위축됐다가 최근 다시 살아나는 추세다.

한국과학기술평가원 이장재 연구개발평가팀장은 "불황 속에서도 연구개발 투자를 꾸준히 하는 기업은 성공할 확률이 크다" 고 강조했다.

LG연구원 산업연구센터 권혁기 박사는 "도요타 자동차는 일본 내수시장이 얼어붙은 가운데서도 올해초 30대 남녀 고객을 겨냥한 새차(윌바이와 비비)를 내놓아 경영 침체를 벗어났다" 며 "고객과 시장의 요구를 한발 앞서 포착해 이를 전략적으로 수용한 신제품 개발에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 고 말했다.

고윤희.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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