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오락가락 정액진료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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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정액진료비 1만2천원 이하이면 2천5백원, 1만2천~1만5천원이면 3천원' (2일 입법예고).

'정액진료비 1만5천원까지는 2천2백원으로 단일화' (7일 당정회의).

정부의 정액진료비 정책이 갈피를 못잡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일 정액진료 본인부담금을 이원화하는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과 규칙을 입법예고했다.

정액진료비가 1만2천원 이하일 경우 지금보다 3백원 올리되 진료비가 1만2천~1만5천원이면 평균 1천원 정도 내린다는 게 입법 요지다.

당시 복지부는 "의료보험 재정에서 5백50여억원을 더 부담해야 하지만 의약분업으로 인해 진료비가 늘었다는 불만을 줄일 수 있다" 고 설명했다.

이 정책은 5일 만에 백지화됐다. 당정회의에서 민주당측이 "국민 부담을 줄여야 한다" 는 논리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사전에 당정협의를 하지 않고 입법예고를 한 것인지, 당이 생색을 내려 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정책수립 과정이 어설프다는 얘기다. 국민으로서는 혼란스럽기 그지 없는 일이다.

더구나 의료보험 재정상태를 감안할 때 이번 조치는 납득하기 어렵다. 당장 지역의보 재정이 파산 직전에 몰려있고 직장과 공무원.교직원 보험 재정도 내년이면 바닥을 드러내게 된다.

의보 재정의 부담이 당초 5백50억원의 다섯배 이상인 2천8백억~3천억원으로 늘어나게 됐기 때문이다.

환자들의 입장에서도 당장 3백~8백원 덜 낸다고 결코 좋아할 일이 아니다.

의보재정이 고갈되면 의보료 인상이나 국고지원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어 결국 국민들의 부담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의약분업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서는 당장 환자의 부담을 늘려서는 안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바꿨다" 며 임시방편임을 시인했다.

의보재정이 최악으로 가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당장의 어려움을 피하려 했다는 얘기다.

당정의 이번 결정은 '소액진료는 본인이 부담하고 암 등 중병은 의료보험이 담당케 한다' 는 의보제도의 개혁 방향과도 배치된다.

건강연대 허윤정 건강네트워크팀장은 "환자 부담이 늘어나면 의보 혜택 범위를 확대하면서 국민에게 부담 증가의 불가피성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면서 "5일 만에 정책을 뒤집는 것을 보면 의료개혁의 밑그림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고 지적했다.

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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