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개운찮은 생보사 상장 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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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삼성.교보생명 상장을 사실상 무기 연기키로 한 금융감독원의 6일 결정은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남기고 있다.

무엇보다도 1999년 6월 30일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이 이 문제를 다시 꺼낸 시점부터 따져 1년6개월을 허송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연기의 이유도 석연치 않다. 금감원은 그동안 "현재 생보사들은 형식상 주식회사지만 실제로는 상호회사로 운영돼왔다" 며 "이 때문에 생보사 자산 중 상당부분은 계약자 몫" 이라고 누누이 강조해왔다.

요컨대 그동안 생보사들이 계약자들의 보험료에 의존해 성장했으면서 주식회사란 이유로 더 걷은 보험료를 되돌려주지 않아 막대한 자산을 축적했다는 얘기였다.

생보사들이 "계약자들에게 공모주 우선 청약권을 주겠다" 는 등의 절충안을 제시했던 것도 이같은 성장배경을 생보사들 스스로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생보사 상장의 허가권을 쥔 정부는 현재 생보사 자산 중 얼마 만큼이 계약자 몫인지 가려주는 심판관 역할만 하면 족했다. 계약자 몫의 계산은 기술적인 문제일 뿐 특별히 정책적 판단을 필요로 하는 일도 아니다.

이와관련, 금감원 강병호 부원장은 6일 "생보사측이 제시한 상장안은 정부가 나름대로 설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었다" 고 말했다.

이 말은 정부도 내부적으론 계약자 몫이 얼마인지 계산해봤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부는 그동안 계약자 몫이 얼마인지 보다는 계약자 몫을 어떻게 나눠줄 것이냐는 문제에만 매달려왔다. 이러다 보니 생보사가 주식회사라는 법적인 한계에 부닥쳐 한발짝도 더 나가지 못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애초부터 생보사가 계약자 몫을 어떤 방법으로 돌려줄지는 정부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었다" 며 "정부는 생보사가 상장을 하고 싶으면 현재 자산 중 얼마 만큼은 계약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판정만 내려주면 그만이었다" 고 지적했다.

그래야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생보사 상장 문제가 '흥정' 의 대상처럼 인식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생보사 상장을 둘러싼 논란은 정부가 간섭하지 말아야 할 일에 매달렸다가 정작 꼭 해야 할 심판관 역할엔 실패한 채 막을 내린 것 같아 뒷맛이 개운치 않다.

정경민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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