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추적] 노점상 대표에게 노점 단속권? … 구청과 수상한 공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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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9일 서울 종로2가 ‘젊음의 거리’에서 노점상들이 영업을 하고 있다. 종로구는 1월부터 이곳 등 네 곳에 ‘노점특화거리’를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김태성 기자]

서울 성북경찰서가 9일 종로구청 건설관리과 가로정비팀에서 자료를 가져갔다. 모두 노점상 단속에 관한 것들이었다. 경찰은 지난 5일에도 이곳을 압수수색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의 과태료 징수 대장, 당시 근무자 명단 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경찰은 자료가 저장돼 있는 노트북도 가져갔다.

경찰 관계자는 “종로 대로변 노점상들의 대표가 공무원에게 수십만원씩 여러 차례 돈을 건넨 의혹도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거리에 세워진 불법 입간판 등에 과태료를 부과해야 하는 단속 공무원이 이를 눈감아 주는 대가로 돈을 받았다는 제보가 들어와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경찰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공무원이 일회성으로 돈을 받은 행위가 아니다. 단속 공무원과 노점상연합회의 뿌리 깊은 유착 비리가 수사의 초점이다.

경찰 관계자는 “공무원이 단속 권한을 노점상 대표에게 넘겨주고, 대표는 노점상들로부터 ‘단속에 안 걸리는 대가’로 돈을 받았다. 이 돈의 일부는 다시 공무원에게 들어갔다”고 말했다. 공무원이 노점상 대표를 통해 노점상을 관리해 왔다는 얘기다.

이날 종로2가 이면도로 ‘젊음의 거리’. 오후 2시가 되자 겨울비에도 영업을 준비하는 노점들로 거리가 분주했다. 종로에는 크고 작은 1000여 개의 노점이 영업하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노점상 J씨(55)는 경찰이 수사하고 있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전해 줬다. 그는 “2006년과 2007년에 과태료 명목으로 종로 노점상연합회에서 6만원을 걷었다”며 “이것과 별도로 2007년 6월에도 불법도로점용세 명목으로 5만원을 냈다”고 말했다.

J씨는 노점상연합회가 이런 식으로 지난해까지 매년 현금을 걷어 갔다고 했다. 그는 “어느 날 노점상연합회에서 나와 ‘구청에서 단속해 물건을 실어 가면 어차피 당신들이 돈 내고 찾아와야 하는 거 아니냐. 대신 우리한테 돈을 내면 종로구청과 쇼부(협상)를 쳐서 단속하지 않도록 돕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젊음의 거리’에서 만난 또 다른 노점상 K씨(60)도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했다. 그는 “2005년부터인 걸로 기억한다. 연합회에서 매년 6만원씩 걷어 갔다”며 “연합회 회장은 우리에게 걷은 돈이 모두 구청으로 들어간다고 얘기하곤 했다”고 말했다.

종로구청은 지난해 연말까지 종로 대로변 노점상을 단속해 왔다. 대로변 노점들은 이면도로에 위치한 노점 특화거리로 옮기기 전까지 구청의 단속반에 시달렸다. 종로 노점상연합회는 지난해 말 서울시·종로구와 ‘노점 영업 때 법질서를 준수하고 상호 우호 관계를 유지한다’는 협약을 체결했다. 경찰은 종로구청의 단속이 지속된 지난해 연말까지 ‘공무원과 노점상 대표의 유착 관계’가 지속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노점상에서 노점상 대표로, 대표에서 구청 공무원으로 돈이 흘러가는 과정에서 노점상 대표와 공무원이 돈의 일부를 빼돌렸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종로 노점상연합회 측은 경찰 수사 내용을 일부 인정했다. 연합회 관계자는 “구청에 건의해 과태료를 형평에 맞게 물리도록 조정했다. 원래대로 걷었으면 30만~80만원씩 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해명했다. 그는 “(2006년에) 2700여만원을 모은 적이 있다. 그걸 은행을 통해 구청에 보냈다”며 “우리에게 영수증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납부는 노점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노인들과 (구청에) 민원이 많이 들어오는 취약지구 노점 명의로 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종로구청 관계자는 “단속은 공무원이 직접 한다”며 “우리는 그런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글=강기헌·이한길 기자 ,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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