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와 10시간] 이소라 "노래만으로 세상과 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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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겨울입니다. 곧 이 삭막한 도시도 하얀 눈으로 뒤덮이겠죠. 눈이 오면, 두 손으로는 귀마개를 하고 그리운 친구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겨울이 오면 생각 나는 것들-따뜻한 어묵, 눈 쌓인 전나무, 크리스마스 장식등, 그리고 그녀의 노래들. 많은 이들이 겨울밤에 듣는 그녀의 노래가 너무 좋답니다.

*** 유난히 낯을 가리는 성격

그녀를 만나기 위해 여의도로 달려갔습니다. 그녀가 세상과 연결돼 있는 거의 유일한 공식적인 통로인 KBS 인기 프로그램 '이소라의 프로포즈' 제작 현장을 찾아간 겁니다.

KBS 신관 공개홀 입구에 쌍쌍으로 길게 줄지어 선 그들은 행복한 표정입니다. 20.30대가 대부분인 그들은 입장 1시간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두꺼운 유리로 된 현관문이 열리자 기대에 들뜬 얼굴로 즐거워라 환호성을 올리는 8백여명의 젊은 연인들. 누구나 촬영을 앞두면 긴장합니다. 그녀 역시 굳은 표정이었습니다.

촬영 시작 15분 전의 분장실. 다른 스태프들은 뭐라 떠들면서 달콤한 흑설탕이 든 호떡을 먹고 있고, 거울 앞에 앉은 그녀는 분장사와 함께 몇번이고 화장을 고쳐 만집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그녀는 다시 거울 앞으로, 저는 흥분과 긴장이 어우러진 스튜디오로 향했습니다. 담당 박중민 PD는 스포츠 모자를 눌러 쓴 채 촬영 준비에 한창입니다.

"아휴, 말도 마세요. 얼마전 2백번째 프로포즈 기념 행사도 못했잖아요. 소라씨, 처음 만나는 사람이랑 이야기 하고 그러는 거 유난히 어색해 해요. "

이윽고 그녀가 무대에 올랐습니다. 검정 벨벳의 발목까지 내려오는 낯익은 의상. 유난히 뽀얀 얼굴. 낮게 깔리는 목소리. 환한 웃음. 사람들은 "안녕하세요, 소라에요" 라는 그녀의 간단한 인사말에도 환호성을 올립니다. 임창정.이정재.조트리오.서문탁씨 등이 그 밤 그녀의 프로포즈에 응했습니다.

그녀가 열정적인 록커 서문탁씨의 가늘고 긴 손가락을 칭찬했습니다. 서문탁씨가 "손과 발만 날씬해요" 라고 답하자 그녀는 "두 군데나 날씬한 게 어디에요" 라고 말해 폭소가 터졌습니다. 하하.

그녀의 새 앨범 4집이 곧 세상에 선보입니다. '꽃' 이라는 이름의 새 앨범은 이번에도 그녀의 음악적 동반자 김현철씨가 제작을 총괄했습니다.

*** 곧 나올 4집 '100% 이소라風'

"저는 김현철씨 노래를 부를 때 가장 어울리고 편안해 보인데요. 또 김현철씨 노래는 제가 부를 때 가장 돋보인다나요. "

타이틀곡 '제발' 등 모두 11곡의 노래를 담은 새 앨범은 1백% '이소라풍' 입니다. 지난 3집의 일부 곡에서 선보였던 하드 스타일은 완전히 사라지고 고스란히 1집 스타일로 돌아간 겁니다.

특히 '제발' 은 가사와 멜로디 모두 가슴저립니다. 이어폰을 꼽고 처음 듣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아 누가 볼까봐 얼른 고개를 숙였습니다.

"열한곡 가운데 한영애씨의 노래를 다시 부른 '가을시선' 한 곡을 빼고는 모두 제가 가사를 썼어요. 사랑의 설레임, 이별의 아픔, 그런 것들이죠. "

노랫말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녀가 혹시 누구와 사랑에 빠진 건 아닐까요. 아니면 사랑을 잃어버렸거나. 그녀는 대답이 없습니다.

녹화 다음날부터 그녀는 또 '연락두절' 입니다. 그녀는 그 흔한 핸드폰도 하나 가지고 다니질 않습니다.

새 앨범 출반을 앞두고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에 애가 탄 매니저는 "뭐, 어쩔 수 없어요. 원래 그래요" 랍니다.

*** 자신의 심경인듯 노랫말 애절

아마 어머니와 함께 절에 갔을 거랍니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그녀는 겨울의 절을 찾아 마음을 추스리는 걸 좋아합니다.

오직 노래만으로 세상과 이야기하겠다는 고집을 굽히지 않는 그녀의 새 노래와 함께 할 올 겨울은 무척 쓸쓸하거나 행복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겁니다.

몇 해전 겨울밤, 창백한 반포 주공아파트 단지 주차장에서 다시 만난 옛 여자 친구는 아무렇게나 던져둔 차 뒷자리의 CD케이스를 보더니 "아직도 이소라 듣네" 라며 쓸쓸하게 웃었습니다. 저는 이 겨울에도 또 이소라를 듣고 있습니다.

이소라씨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는

조인스닷컴 기자포럼 (http://club.joins.com/club/jforum_cjh)에 있습니다.

글〓최재희,

사진〓주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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