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천국, 원주 황둔·송계 사이버빌리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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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올해 일흔셋인 심옥남(沈玉南.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송계1리)할머니. 6남매 모두 슬하를 떠나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는 沈할머니에게 올 가을 새 친구가 생겼다.

컴퓨터가 그것이다. 아직은 서툴지만 마주 대할 때마다 신기함과 함께 재미를 느낀다.

沈할머니가 특히 즐기는 것은 편지쓰기. 매일 자신의 주소(7646234@hanmail.net)로 배달되는 편지를 확인하고 수시로 자녀와 손자들에게 편지를 쓴다.

지난 24일 둘째 아들인 염태형(37)씨 앞으로 세돌을 맞은 손자 정우의 생일을 축하하는 e-메일을 보낸 심할머니는 "아들이 군대에 있을 때 삐뚤삐뚤한 글씨로 편지를 보내느라 고생했는데 이런 걱정을 하지않아서 좋다" 며 환하게 웃었다.

컴퓨터에 탐닉하는 사람은 沈할머니 뿐이 아니다. 황둔1, 2리와 송계1, 2리 등 4개리로 구성된 사이버 빌리지는 남녀노소 구분없이 거의 모두 컴퓨터에 빠져 있다.

지난 4월 컴퓨터 보급과 교육이 시작되면서 마을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특히 3메가바이트 이상의 속도를 내는 고속통신망이 개통되고 주민들이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어수선하던 마을 분위기가 차분하게 변해갔다. 농사일을 마치고 상가 등에서 술을 마시던 풍경도 사라졌다.

솔치고개(해발 6백50m)와 싸리재(해발 6백10m)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분지 마을인데다 행정기관의 손길마저 멀어 지난해까지 도박이 성행했지만 이마저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생활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인터넷을 통해 얻은 정보를 농사 짓는 데와 농산물을 판매하는 데 활용하면서 소득이 높아졌다. 인터넷으로 영화를 감상하는 등 문화생활을 누리는 주민도 많아졌다.

올해 3백가마니의 쌀을 생산한 사이버빌리지 정보화추진위원장 남한순(南漢淳.53)씨는 인터넷 덕을 톡톡히 봤다.

南씨는 "마을에서는 쌀 한가마니를 17만원밖에 받을 수 없었으나 인터넷을 통해 도매상에게 18만5천원에 1백가마니를 팔아 1백50만원을 더 벌었다" 고 기뻐했다.

7천여평의 밭에서 배추.무 등 채소를 재배하는 김광수(金光洙)씨는 "인터넷으로 재배기술을 익혀 소득이 10% 늘어났다" 고 설명했다.

인터넷으로 서울에 있는 딸들과 무료전화를 자주 하는 김영구(金英九.67)씨는 "사나흘에 한번은 컴퓨터로 무술영화를 본다" 고 말했다.

사이버 빌리지의 혜택은 이밖에도 많다.

이달 중순부터는 황둔보건진료소에 설치된 원격화상진료시스템을 통해 원주보건소 의료진으로부터 원격 진료를 받고, 진료소에서 당뇨 치료제 등의 약품도 받게 된다. 토지 및 임야대장등본 등 각종 민원 서류도 뗄 수 있게 된다.

정부의 구조조정으로 황둔출장소가 민원실로 바뀌면서 이전까지는 주민등록등.초본 등 팩스민원만 발급이 가능했었다.

웹 카메라를 통해 주민들끼리 얼굴을 보며 하는 통화와 선생님과 자녀에 대한 상담도 가능해진다. 도시지역 학원 수준의 교육사이트를 링크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컴퓨터가 미처 보급되지 않은 주민들을 위해 8대의 컴퓨터와 스캔 등 각종 장비를 갖춘 마을정보센터도 생겼다.

마을 외곽에 있어 고속통신망 설치가 안된 66가구에는 인터넷 텔레비전이 공급돼 모뎀 속도로 인터넷이 가능하다.

강원도가 이 마을을 사이버 빌리지로 만들기로 한 것은 지난 1월. 도시지역에 비해 컴퓨터 접근 기회가 부족한 마을에 고속통신망과 연결된 컴퓨터를 보급하고 교육을 통해 정보 활용 능력을 키움으로써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국.도비와 한국통신.삼보컴퓨터의 지원 등 모두 13억2천6백만원을 들여 시작된 사업은 4월 펜티엄급 컴퓨터 1백대 보급, 8월 1일 초고속 정보통신망 개통, 9월 1백40대의 웹카메라 보급 등 차질없이 진행됐다. 마을 포털사이트(http://www.kwcv.or.kr)도 이달 중순 사이버 빌리지 준공과 함께 개통된다.

포털사이트에는 면사무소 등 행정기관, 황둔초.중학교, 황둔찐빵, 치악산관광농원, 서마니농원, 감악산, 청송영농조합 등 21개의 홈페이지가 입주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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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기획관리실장 권혁인(權赫仁)씨는 "농어촌 정보화의 표준 모델을 마련한다는 차원에서 이 사업을 기획했다" 며 "주민들이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을 할 계획이다" 고 말했다'

원주=글 : 이찬호, 사진 : 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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