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남북] 평양 기상 악화, 출발 지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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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앞두고 설렘 속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이산가족들은 30일 반세기 만의 만남을 고대하며 상기된 표정이었다.

이날 저녁 북측 상봉단을 태운 비행기가 김포공항에 도착하자 상봉 가족뿐 아니라 TV를 통해 지켜보던 일반 시민들도 일제히 환영의 박수를 보냈다.

○…남측 방문 단장인 봉두완(奉斗玩)대한적십자사 부총재는 호텔 출발 직전 '그리운 평양' 이라는 자작시를 낭독해 눈길을 끌었다.

奉부총재가 '평양,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마음, 살아 생전 갈 수 있을까, 조바심으로 살아온 지난 세월…' 로 시작하는 시를 낭독하자 북으로 향하는 이산가족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황해도 수안이 고향인 奉부총재는 "가족들이 대부분 월남해 가까운 친척들은 북에 남아 있지 않을 것 같다" 며 "뜻밖의 친척 상봉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지 않다" 고 말했다.

○…남측 방문단 1백명이 묵은 서울 잠실 롯데월드 호텔에서는 이날 오전 7시20분쯤 버스에 올라타기 위해 서둘러 나오던 蔡훈묵(82)씨가 넘어져 병원으로 후송돼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蔡씨는 호텔 현관에서 발을 헛디뎌 오른쪽 이마를 바닥에 찧는 바람에 눈썹 부위가 2~3㎝ 가량 찢어지고 피가 흐르는 상처를 입었다.

蔡씨는 서울중앙병원에서 봉합수술을 받은 뒤 적십자사가 준비한 승용차를 타고 겨우 공항으로 이동, 방문단에 합류했다.

○…평양 순안공항의 기상 사정으로 서울 출발시간이 3시간40분 가량 지연되자 남측 방북단 일행은 잠시 당황했다.

방북단은 "50년 기다린 것, 몇 시간 못 기다리겠느냐" 며 태연해 하면서도 혹시나하는 마음에 애를 태웠다.

남동생을 만나러 가는 金옥선(80.여)씨는 "동생을 보러 간다는 게 오늘 아침까지도 믿어지지 않았는데 이러다 못가는 것 아니냐" 며 초조해 했다.

방북단은 당초 평양에 도착한 뒤 점심식사를 할 예정이었으나 출발이 지연돼 낮 12시쯤 한과와 떡.샌드위치 등 간단한 기내식으로 식사를 대신했다.

○…당초 이날 방문단을 태우고 평양으로 가기로 예정됐던 비행기는 대한항공의 737기종이었으나 방문단의 짐이 예상보다 많자 대한항공측이 에어버스사 제작 A-330 대형 비행기로 교체했다.

이날 상봉단의 짐은 3백28개로 컨테이너 12개에 나눠 실렸으며 총 중량이 5.85t에 달했다.

이처럼 짐이 초과된 것은 대표단 20여명이 컨테이너 5개 분량의 짐을 가져간 탓이라고 공항 관계자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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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반포동 센트럴시티에 마련된 집단상봉장은 오후 1시 집결 시간에 앞서 오전 11시부터 남측 가족들이 속속 모여들어 분주한 모습이었다.

센트럴시티 5층 집결 장소에 도착한 남측 가족들은 상봉교육이 열리는 크리스탈홀 앞에서 북측 가족과 남측 가족의 이름이 함께 쓰여진 신분(ID)카드를 받아든 뒤 50년 만에 다시 만날 가족들을 그리며 삼삼오오 이야기 꽃을 피웠다.

이날 오전 11시쯤 도착한 김연수(67.경북 포항시)씨는 "이틀 전부터 달라졌을 형님 얼굴을 이리저리 상상하느라 한숨도 자지 못했고, 오늘도 급한 마음에 포항에서 오전 6시 버스를 타고 왔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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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럴시티 6층 밀레니엄 홀에는 북의 가족과 남의 가족 5명이 함께 앉을 수 있도록 배치된 1백개의 원형 테이블이 마련됐다.

상아색 천으로 싸인 테이블에는 꽃으로 장식된 초가 중간에 놓여 있으며 볼펜 두 자루.종이.눈물 닦을 화장지 등이 준비됐다.

○…북의 이근섭(75)씨를 만나러 온 남측 가족들은 남다르게 '상봉 운' 이 좋았다.

원래 이근섭씨는 상봉 명단 선정에서 탈락했으나 당초 명단에 포함됐던 김석기(69)씨가 몸이 아파 오지 못하게 되는 바람에 李씨가 자리를 채우는 막판 행운을 잡은 것이다.

"처음에 명단이 발표됐을 때는 '이번에도 틀렸나 보다' 라고 생각하고 다음 기회를 기다렸다" 는 동생 영자(71).정자(65)씨는 "최종 명단에 오빠가 추가됐다는 소식을 듣고는 온 가족이 기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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