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절망하는 젊은 미술가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유망한 미술학도가 대학을 졸업하고 10년씩 작업에만 정진해도 작품 한점 팔기 어려운 세상이다.

"지난 10년동안 한번도 작품을 팔아보지 못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최초로 소품 한점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얼마를 받겠다고 해야할 지 모르겠네요. "

지난달 성곡미술관에서 초대전을 연 김성남(34)씨의 말이다. 그는 주요 그룹전에 단골로 초대받고 있으며 올해 성곡미술관이 선정한 '내일의 작가' 다. "내가 택한 길이니까, 끝까지 가겠다" 는 그는 아직 미혼이다.

김관수(47)씨. 1981~90년에 활약했던 'TA-RA' 그룹의 창립멤버이자 당시 유행하던 설치미술로 각광을 받았던 작가.

경희대 출신으로 대성이 기대되던 그는 90년대 들어 작업을 중단했다. 최근 문예진흥원에서 열린 '한국 현대미술 다시 읽기' 전에 당시 작품으로 초대받은 그는 "어느 정도 생활문제를 건사할 수 있게 되면 작품활동을 다시 할 생각" 이라고 말한다.

조성무(47)씨도 90년대 들어 종적을 감췄다. 제도권과의 관계가 원활하지 못한데다 실험적인 작품들이 팔리지도 않았던 탓이다.

그는 80년대 중반에 미술평론가협회의 '석남 미술상' 을 수상했으며 각종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두각을 나타냈었다.

80년대 난지도 그룹의 윤명재(42)씨도 유사한 케이스로 붓을 꺾었다. 두 사람 모두 일본에서 초대전을 할 만큼 인정받던 작가다.

미술평론가 심상용 교수(동덕여대 미술학부)는 작가의 길을 가겠다는 학생들이 찾아오면 '일단 말리고 본다' 고 말한다.

"전망이 안보이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경우 젊은 작가들을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 자질만 있으면 작품을 사주는 곳도 있고 전시공간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배가 고픈 것은 사실이지만 작품활동은 계속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내던져지는 겁니다. "

뉴욕 현대미술계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한 중진작가는 직설적으로 독설을 내뱉는다. "작품은 한점도 팔지 않고 모두 보관하고 있다. 생활은 노동으로 해결해왔다. 한국사회는 내 작품을 가질 자격이 없다. 죽기 전에 모두 태워버릴 생각이다." 이 작가들을 어찌할 것인가.

조현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