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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食’한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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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 농업생산성 증대는 필수적이다.

세계적으로 식량위기에 대한 우려가 다시 고조되고 있다. 반면 내수 중심인 우리나라는 쌀 풍작과 대북지원 중단, MMA 쌀 수입물량 증가, 쌀 소비 감소 등으로 유발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으로 심각한 쌀값 하락을 초래해 국제적 동향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식량 확보는 석유보다 중요…2015년 자급률 25%로 축소 ‘위험천만’

과연 우리나라는 장기적으로 식량 수급에 문제가 없는가? 1970년대부터 2005년까지 국제 곡물시세는 녹색혁명의 결과 생산능력이 수요를 초과해 매우 안정적인 가격을 유지했다.

그러나 2006년부터 움직이기 시작한 곡물가는 2007년에 접어들면서 ‘Agflation(Agriculture+ Inflation)’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폭등세를 유지했다. 이 기간 우리가 먹는 중단립종 쌀인 ‘자포니카(Japonica)’ 종은 2004년 기준으로 t당 400달러에서 1200달러로 무려 300% 상승하였다.

쌀의 자급이 확보되지 않았다면 2008년과 같은 전 세계적 농산물 수급 불균형은 우리에게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했을 것이다. 특히 쌀의 경우 전 세계 생산량의 10% 이내만 국제 무역시장에서 거래돼(thin market) 수급 불균형이 가격탄력성에 미치는 영향은 훨씬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자국 식량 확보를 위해 세계적인 쌀 수출국인 베트남·태국 등이 한시적으로 취한 2008년 쌀 수출 통제가 수입국인 필리핀의 쌀값 폭등을 야기한 것이 그 대표적 예다.

■ 곡물가 폭등

농산물 가격의 상승은 2008년 하반기에 들이닥친 국제 금융위기로 주춤해졌으나 근본적인 수급 불균형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수요와 공급 사이의 불균형으로 인한 농산물 가격 상승은 단기적 국제 곡물투기자본의 개입을 제외하면 크게 3가지 요인으로 집약된다. 첫째는 인구 증가다.

전 세계 인구는 1959년 30억 명에서 2010년이면 70억 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며, 2050년까지는 20억 명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FAO 2009). 반면 지구의 경지면적 증가는 매우 제한적이며 가용 면적의 90%가 이미 경지로 이용되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육류 섭취의 증가다.

아시아를 비롯한 신흥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에 따른 가처분소득의 증가는 쌀 중심의 칼로리 섭취에서 점차 육류 소비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1칼로리에 해당하는 육류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25칼로리의 곡물이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변수가 바이오연료 수요의 증가다.

바이오연료는 현재의 기술수준으로 볼 때 국제 원유가가 배럴당 72달러 이상 올라가면 충분히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오연료 원료로는 바이오디젤을 위한 유채와 바이오에탄올을 생산하는 사탕수수·옥수수가 있다. 특히 옥수수의 경우 시장가격에 따라 바이오에탄올 연료로 전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유가가 100달러 이상에서 형성된 2008년 이미 이러한 우려가 현실화한 바 있다.

이러한 곡물 수요의 증가는 필연적이며, 해외의존도가 높은 일부 농산물 수입국가는 국가식량정책을 ‘식량확보’에서 ‘식량자급’으로 전환을 꾀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의 전환은 미래 어느 시점에서는 식량을 아무리 높은 가격을 주더라도 살 수 없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중국이나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등 중동 산유국이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프리카·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일부 동구유럽 국가를 대상으로 식량 확보를 위한 경지를 확보했거나 추진 중이다. 한국농어촌공사도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10만ha 규모의 해외 농업개발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국제 비정부기구(NGO) 등에서는 부자나라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미끼로 아프리카와 같은 저소득국가를 착취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며, <파이낸셜타임스>나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 같은 서구 언론들은 이를 신식민주의(Neo-colonialism)라고 비난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기업이 추진하던 200만ha 규모의 마다가스카르 농업개발사업도 현지의 반대 여론에 부닥쳐 중단되었고, 현지 정권이 바뀌는 한 원인을 제공했다고 알려졌다. 빈국의 입장에서는 경제적으로는 의미 있는 사업으로 보일지라도 자국민의 식량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선진국의 식량기지화하는 것은 좋은 평가를 받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로마에서 열린 식량정상회의(World Summit on Food Security)는 유엔이 주도해 개발대상국 농민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부자국가들의 해외 농업개발에 대한 윤리규정 제정을 추진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회의에 참석한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해외 농업개발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어떻게 증가하는 인류를 먹여살릴 수 있을까? 지난해 10월 로마에서 열린 ‘2050년, 어떻게 세상을 먹여살릴 것인가?’라는 FAO 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내용에 인식을 같이했다.

▷2050년까지 40% 늘어나는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서는 식량 70% 증산이 필요하다. 특히 신흥개발국의 경우는 100% 증산이 필요하다.

▷증산 목표의 90%는 생산기술 향상을 통해, 나머지 10%는 경지면적 증가에서 올 것이다. 현재의 지구상 경지면적 15억Ha에서 8%에 해당하는 1.2억Ha가 더 증가할 것이며, 이는 대부분 신흥시장에서의 증가다.

▷생산성 향상에는 농업분야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필요로 한다.

▷생산성 제고를 위한 민간분야에서의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지적재산권 보호 등 일부 지역에서의 법률제도정비가 필요하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최근 정부가 내놓은 2015년까지의 식량 자급률 목표를 보면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경시하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 우리보다 섭취 칼로리 기준 자급률이 높은 일본의 경우 자민당 정권 시절에는 41%에서 50%까지 높이겠다는 정부 목표를 세운 바 있으며, 현재의 민주당 하토야마 정권도 농가당 소득보존제도를 추진해 농업인의 생산의욕을 고취해 식량자급률을 높이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 새 주곡자급정책 마련해야

반면 식량자급률이 27%에 불과한 우리나라는 2015년 목표를 현재보다 낮은 25% 수준으로 잡고 있으며, 이는 세계에서도 유례 없는 식량자급률 축소 계획이다. 특히 주곡인 쌀의 경우 현재의 99% 수준에서 90%로 낮추고, 맥류는 6.5%에서 4.0%, 채소류는 92.2%에서 85%, 과일류는 82.7%에서 66%로 목표를 수정했다(민주당 조배숙 의원 2009 국정감사).

물론 정부는 해외 농업개발을 통해 안정적 곡물 수급을 꾀하고 있지만, 위에서 언급한 국제적 정치·경제환경을 고려할 때 난관이 예상된다. 또한 생산성이 매우 열악한 북한의 농업을 고려해서라도 통일에 대비한 새로운 주곡자급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21세기에 식량의 안정적 확보는 석유 이상의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

대부분의 먹을거리를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최소한 주곡 자급 유지라는 뚜렷한 정책목표가 있어야 한다. 주곡 자급의 중요성은 이미 2008년 세계적 곡물파동에서 충분히 확인되었다. 왜 식량수입국인 일본이나 중동의 석유부국들이 식량 확보 차원을 넘어 식량자급을 국가적 목표로 전환했는지 이해해야 한다.

단지 시간문제인 세계적 식량위기를 선제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장기적이며 지속적인 정책적 결단이 중요하다. 정부의 지속가능한 농업 육성정책과 우리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협조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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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글 김용환 신젠타코리아 대표이사·농학박사 [yongwhan.kim@syngent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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