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덕 화랑서 박실 '시간여행…' 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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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서울 청담동 박영덕 화랑(02-544-8481)에서 12월 3일까지 열리고 있는 '박실전' 은 역사와 시간의 위계질서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전시다.

박실(42)은 조각과 평면작업, 설치와 퍼포먼스에 이르는 다양한 형식으로 '생성과 소멸' 이라는 주제를 추구해 온 중견 여성작가.

이번의 아홉번째 개인전에선 1996년 이래 계속해온 '시간여행-수수께끼' 연작들을 내놨다. 나무상자와 종이 콜라주 작업들이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벽면에 두줄씩 수평과 수직으로, 혹은 직사각형 모양으로 줄지어 붙어 있는 상자들이 우선 눈에 들어온다. 상자 바닥에는 화석 같은 흔적도 보인다. 거기에 조약돌이 몇개 놓여 있다. 위를 덮은 유리에는 희고 둥그런 무늬들이 찍혀 있다.

바닥은 지층의 화석만큼 오래된 시간을, 돌맹이는 우리의 존재나 역사적 사건들을 나타내는 것 같다. 유리 위의 흰 무늬들은 일시적으로 바닥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현재를 상징하고 있다. 상자 하나 하나는 객개의 역사와 시간을 의미한다.

상자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돼 있는 모습은 역사뿐 아니라 우주적 시간까지를 관장하는 초월적 질서의 존재를 암시한다.

다른 벽에는 콜라주 작품들이 붙어 있다. 네모지거나 타원 형의 종이들을 청.녹으로 엷게 채색해 오려붙인 위에 둥근 흔적들이 어수선하게 찍혀 있는 유리판이 있다.

각기 다른 질서가 나름대로 자리잡은 위로 현재의 발자국이 일시적 중요성만으로 찍혀 있다는 해석 같다.

이밖에 우주의 생성과 그속에 피어나는 생명현상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듯한 동판작품들도 일부 선보인다.

작가는 이화여대 미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98년 초에 훌쩍 파리로 건너가 현지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인간의 생로병사.역사.우주의 생성과 소멸조차 긴 시간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업들을 통해 나를 이끌어가는 알 수 없는 의미와 푸른 생명의 수수께끼들과 만나고 싶다" 고 말한다.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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