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중질유 54불 육박 "미국경제 다시 침체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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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 지난 11일 런던 국제석유거래소에서 북해산 브렌트유가 사상 처음 50달러를 돌파했다. 숨가쁘게 호가를 내고 있는 석유중개인의 표정이 크게 상기돼 있다. [런던 AP=연합]

북해산 브렌트유가 처음으로 배럴당 50달러를 넘었으며, 서부텍사스 중질유(WTI)는 54달러에 육박했다.

11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1월 인도분 WTI는 배럴당 33센트(0.6%) 오른 53.64달러로 마감했다. 앞서 열린 런던시장에서 브렌트유 11월 선물가격은 95센트(1.9%) 상승한 50.66달러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수급 불안이 점증하고 여기에 투기 수요가 편승하면서 유가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급 불안 요인으로는 이라크 등 지정학적 변수 외에 잇따른 태풍 여파로 미 멕시코만 일대의 정유시설 복구가 늦어지고 있으며, 주요 산유국인 나이지리아 석유 노동자들의 파업, 그리고 러시아 최대 석유회사 유코스의 탈세 사건으로 인한 생산차질 등이 꼽힌다. 이런 추세라면 배럴당 60달러도 멀지 않았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골드먼삭스의 원자재 전문가인 스티브 스트롱인은 "난방 수요 등이 겹쳐 올 겨울 중에 유가가 한두 차례 60달러선을 위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고유가가 미국 경제를 다시 침체에 빠뜨릴 수도 있다고 CNN 머니는 보도했다.

이 방송은 투자회사 오펜하이머의 한 애널리스트의 말을 인용해 "현재의 유가는 1980년 초 오일쇼크(당시 유가를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배럴당 79달러)에 비하면 아직 낮지만 이 정도로도 경기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와코비아증권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존 실비아는 "유가가 70달러에 달하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인플레이션을 우려해 금리를 계속 올리면 분명히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모건스탠리의 스티븐 로치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미국 소비자들은 고용시장 부진과 고유가 때문에 돈 쓸 여력이 크게 줄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WTI가 앞으로 3~4달러 더 상승할 것이며, 브렌트유도 50달러 이상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기업이나 가정의 에너지 효율성이 높아졌기 때문에 이 정도 유가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누구보다 FRB 간부들이 고유가가 성장률을 좀 낮출 수는 있어도 경기침체까지 유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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