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지체아 껴안기] 장애 감싸는 '우정의 하모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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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13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정신지체아 등 장애아동 특수학교 '한국선진학교' 강당.

이웃한 7명의 상록초등학교 학생들과 선진학교 합주반 단원 20여명이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 기악 합주 연습이 한창 무르익고 있다.

선진학교 학생들이 먼저 실로폰으로 타악기 연주를 시작하자 일반 초등학교인 상록초등학교 친구들도 바이올린.첼로 등 현악 선율로 화답했다.

처음엔 박자.강약 모두 제각각인 선진학교 학생들의 연주를 따라잡기가 힘겨운 듯 상록초등 학생들의 연주도 어색하기만 했다.

그러나 서너 차례 계속되는 연습으로 호흡이 맞춰지자 거칠고 불안한 음색은 어느새 부드러운 화음으로 바뀌었다.

이들 두 학교 학생들의 합주는 장애인 특수학교와 일반 학교 사이의 교류를 넓히기 위한 통합교육 프로그램의 하나. 1998년부터 두 학교는 한 달에 두 번씩 기악합주 연습을 하며 음악 통합교육을 실시해 오고 있다. 선진학교는 이외에도 체육.미술 등 10여개 분야에서 다른 학교와의 교류를 넓혀가고 있다.

선진학교 교사들은 일반 학생들과 함께 연주를 하며 정신지체아들도 지적 자극을 받아 실력이 크게 늘고 있다며 기대 이상의 교육 효과에 크게 만족해 했다.

이 학교 음악교사 이명은(李明恩.여)씨는 "수십차례 일반 학생들과 함께 연주하면서 음감과 박자 감각이 생겨 요즘은 생소한 곡을 가르쳐도 힘이 덜 든다" 고 말했다.

두 학교 합주반은 16일 특수교육원에서 열리는 제1회 특수교육전문직 워크숍에 축하 연주를 맡아 '우정의 화음' 을 선보일 예정이다.

지난 3년간 호흡을 맞춰온 이들 학생들도 이젠 표정만으로 상대의 기분 상태를 알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다.

이날 선진학교의 한 정신지체아 학생이 강당에 들어서는 상록초등 박나래(13)양을 힘차게 껴안고 반가워하자 朴양도 상대의 등을 두드려주며 화답했다.

"처음엔 눈빛 마주치는 것도 무서워 악보만 쳐다보곤 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선진학교 친구들 방식으로 인사하는 게 하나도 어색하지 않아요. "

선진학교 李교사는 "교류 첫해만 해도 우리 학생들이 상록초등 학생들 주변을 돌거나 바이올린 등을 갖고 장난을 쳤지만 이제는 함부로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빼앗는 거친 행동도 거의 없어졌다" 고 말했다.

'교류 합주' 이후 달라진 것은 선진학교 학생들만이 아니다.

상록학교 학생들 역시 정신지체아에 대한 선입관을 버리고 '자신과 신체 상태가 다른 또래 친구일 뿐' 이라는 동반자 의식을 갖게 된 것.

상록초등 음악교사 김희남씨는 "우리 학교에서는 산만하고 떠들기 좋아하던 아이들이 선진학교에 가면 보채는 정신지체아 친구를 달래고 연주법을 가르쳐주기도 하는 등 의젓해진다" 며 대견스러워 했다.

현재 78개 정신지체아 특수학교 등 전국 1백29개 장애아 특수학교에서 일반학교와 통합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통합교육은 94년 특수교육진흥법 개정을 통해 제도화됐다.

안산=정용환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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